Fact&Fiction/시니어시대

자가점검(2) - 달라지는 외모

truehjh 2024. 4. 24. 11:28

달라지는 외모

 

화장실 전등 세 개 중 두 개가 불이 켜지지 않았다. 전등 한 개 나갈 때부터 교체하겠다고 차일 피일 미룬 것이 1년이 다 되었다. 크게 불편하지 않아 그런대로 지내고 있었는데, 얼마전 조카가 와서 전등을 갈아 끼어 주었다. LED 전등으로 교체하니 환한 둥근 달빛 아래 있다가 강열한 태양빛 안으로 옮긴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환한 빛 아래서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그 전에는 보이지 않던 턱 아래 주름이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거기다가 반백이 되어 있는 머리카락, 이마와 입 주변에 깊게 파인 주름도 자세하게 보였다. 외모에 나타나는 모습으로 늙어있음을 절실하게 느끼는 순간이었다.

 

눈으로 직접 노화를 확인하게 해주는 지표는 거울에 비친 턱주름의 변화뿐만이 아니다. 외부로 드러나지 않는 몸의 피부 변화 역시 마찬가지다. 보조기에 깊게 파인 엉덩이 피부가 짙은 갈색으로 얇아져서 자꾸 물집이 생기곤 한다. 오래된 멍든 자국처럼 다리에 남아있는 흉터들로 매끈한 곳이 없다. 보조기 쇠에 맞닿은 부분은 여지없이 자국이 남아있고, 가죽의 압력으로 인해 무릎의 피부마저 얼룩덜룩하다. 색바랜 몸의 피부뿐 아니라 늘어진 얼굴의 피부도 마찬가지다. 동안이라는 소리를 듣고 살았기에, 그럴 때마다 제 나이로 보였으면 좋겠다고 은근히 뻐기던 시기가 있었다. 아마도 화장하지 않고 꾸미지도 않은 맨 얼굴 때문에 젊어보였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늙어가는 얼굴이 허무하기만 하다. 화장기 하나 없이 신경 쓰지 않고 있는 모습이 이제는 부끄러울 지경이다.

 

얼굴을 꾸며주는 화장품에는 별로 신경을 쓰고 않고 산 대신, 옷에 대해서는 좀 달랐다. 옷으로 나의 부족한 부분을 감싸주고 싶었고, 잘 갖춘 의상을 통해 세련된 모습으로 비춰지기를 원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값싼 청바지에 면타셔츠만 입어도 맵시가 난다는 말을 듣고 살았는데, 이제는 그렇게 입고 다닐 수가 없다. 아니 그렇게 입고 다녀서는 안 될 것 같다. 교회 여전도회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한참 치장하고 나온 내 나이 또래의 회원들을 보며 모두 할머니의 모습이라고 느끼면서도 나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닌 것이 아니었다. 내 모습을 확인하지 않아서였다. 나 역시 옷을 차려입어도 태가 안 난다. 옷에 대한 센스도 없어지고 색감의 선택도 뒤쳐졌다. 그러나 이것이 달라진 나의 모습인데 어찌하랴.

 

외부로 드러나는 노화의 모습은 서서히 느껴지는 몸 내부의 노화와 달리, 어느 순간 급작스럽게 느껴져서 당황하게 만든다. 물론 예전에 흰머리카락, 주름, 잡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노화가 여실히 드러나는 변곡점이 있다. 한 인간의 몸의 상태가 어느 일정한 시기를 전후해서 극명하게 달라지는 그 지점이다. 갱년기를 전후해서도 한 차례의 변곡점이 있었다. 마치 2차 성징이 드러난 후의 모습이 전혀 다르듯이. 갱년기 이후의 모습도 확연하게 달랐다. 그리고 달라진 모습에 익숙해질 무렵 또 한 차례의 변곡점을 맞이했는데, 바로 지금이다. 사춘기와 갱년기에 그랬던 것처럼 노년기에 달라진 이 충격적인 변곡점을 잘 넘어서야 하는데 아직은 어색하고 힘들다.

 

늙으며 달라지는 것이 성장이나 성숙이 아니고 노쇠라는 사실이 허무하다. 진한 화장 한번 안 하고 살아온 나의 얼굴이 어느 순간 늙은이의 모습으로 거울에 비치는 순간, 어찌 허무하지 않겠는가? 다른데 눈 한번 안 팔고 열심히 살았는데 남은 것은 늙은 몸 하나이니. 어찌 허무하지 않겠는가? 할머니가 된 이 마당에서 미래를 이야기할 여력이 남아 있지 않으니, 어찌 허무하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현재의 빈궁한 삶을 이야기하는 것도 마땅치 않고, 먼먼 옛날의 이야기를 하며 살기도 구차하니, 어찌 허무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아무리 외쳐보아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자신의 유한성에 대한 인식은 우울과 불안감에 빠지게 할 뿐이다. 그렇다. 하나님이 주신 이 모습을, 세월이 흘러 만들어진 노인의 모습을 거역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