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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 출근길 지하철 / 박경석 말하고 정창조 쓰다

truehjh 2024. 8. 17. 10:41

출근길 지하철 / 박경석 말하고 정창조 쓰다

 

이동 약자를 위한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설치, 저상버스 운행 등은 활동가 박경석과 그의 동지들이 목숨 걸고 투쟁하여 얻어낸 이동권 확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얻어낸 결과들을 날로 먹고 누리고 있는 우아하고 고고한 당사자들이 그의 투쟁 방식을 폄훼하고 있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북펀딩에서 책 후원으로 구매한 <출근길 지하철>은 읽는 내내 뭉크의 절규 시리즈가 오버랩되어 괴로웠다. 그의 외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젊은 시절 나의 절규와 닮았다고나 할까? 아니면 나의 절규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크고 깊은 울부짖음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외침이겠지!

 

각기 다른 방식의 외침이 메아리 되어 듣는 귀가 생겨날 수 있다면! 아니 그것을 위해 개인의 절규가 불가역적으로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또다시!

 

 

- 목차 -

 

프롤로그 - 시민이 되고 싶습니다

 

1. 출근길 지하철은 왜 안 되는 건가요?

 

2. 우리의 생명은 비용보다 소중하다

 

3. 탈시설이란 말이 어렵다고요? 그럴 리가요

 

4. 우리는 권리를 생산하는 노동을 합니다

 

5. 여기만이, 우리가 정치적 주체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진지예요

 

6. 온건하게 합법적으로 권리를 요구할 순 없냐고요?

 

7. 해방되려면, 원형경기장 바깥으로 나가야 돼요

 

8. 지금은 아주 작은 점일 수 있지만, 언젠가는

 

** 책 중에서 **

 

고작 그 정도 성과를 내기 위해 이렇게까지 하다니 너무 힘들지 않느냐고? 당연히 힘든 것도 많지. 혐오에 시달리고 욕먹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겠어. 난 하도 오랫동안 욕을 먹으면서 살아와서 이런 거에 많이 무뎌져 있긴 한데, 모든 활동가가 그런 건 분명 아니거든요. 정신적으로다가, 육체적으로다가 어마어마하게 힘들어하는 활동가들도 정말 많아. 새벽부터 욕먹고 두들겨 맞을 각오 하고서 맨날 출근길 지하철 오르는 게 얼마나 고역인데.

그런데요. 그까짓 거는 차라리 괜찮아요. 아예 무관심한 거보다는 이렇게 욕이라도 먹는 게 훨씬 낫거든. 자기 목소리를 아무도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한테는요, 세상 죽일 놈 취급을 받아도 목소리 한 번 제대로 내 볼 기회 자체가 엄청 소중한 거예요. p34

 

오히려 피곤하고 욕먹는 거보다도 진짜로 안타까운 거는 이런 거예요. 이렇게 외쳐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한테 지하철행동이 장애인들이 지독하게 차별받고 있는 현실에 대한 문제 제기로는 다가오지도 않는다는 거. 그러거나 말거나 그냥 자기들 평범한 일상을 방해받는 문제로만 여겨질 뿐인 거지. 장애인들이 지하철을 막아서 불편할 뿐이지. 장애인들이 어떻게 살고 있나, 장애인들이 어떻게 하면 차별을 안 당할까는 여전히 남 이야기인 거야. p35

 

아마 저희가 지하철 타고 나서부터 제일 많이 듣는 얘기가 당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남의 권리를 침해하는 게 정당하냐는 말일 텐데요. 맥락 없이 들으면 아주 맞는 말 같아 보일 거야. 그런데 이 말이 맞는 거라면요, 당신들이 누리는 당연한 권리들이 행사되기 위해서 지금까지 누군가들이 희생되어온 건 아닌지를 함께 살펴봐야죠. p59

 

원하던 사회를 단숨에 만들지는 못했더라도, 그 씨앗을 여기서 뿌리고 있는 거죠. 보이지도 않던 사람들의 존재감이 이렇게 세졌다는 거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중요한 변화가 찾아온 건가요? p97

 

지금 노동 개념에 맞춰 생각을 해 보면 도무지 노동으로 인정받는 일을 할 수가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죠. 그런데 이윤이나 생산성, 효율과 무관한 다른 다양한 활동들도 노동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면은, 그렇게 노동개념과 패러다임이 변하게 되면은 이제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p153

 

그런데 과거를 잘 돌이켜 보니까, 최중증장애인들이 정말로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해온 건 또 아니더라고요. 중증장애인들은 그동안 사회와 맞서 싸워오면서, 사회적 변화라는 거를, 자기 권리라는 거를 스스로 만들어왔잖아. p171

 

저는 노동이 궁극적으로는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생각을 해요.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과정이라는 건 결국 자기를 둘러싼 관계를 계속 변화시키는 과정이죠.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들은 이 일을 통해서 자기 존재를 분명히 다시 확인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 자기 확인이란 건 곧 이 사회가 중증장애인이라는 존재를 확인하는 과정이 되죠. 그 사람의 존재부터 해가지고, 이 사회의 조건에 대해서까지 다시 생각을 해 보게 만드는 거야. p180

 

적어도 우리 존재를 그 사람들한테 각인시킨 거잖아. 너네 직접행동할 때마다 장애인 혐오가 늘어난다고요? 계속 혐오하라고 하세요. 그만큼 우리는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더 정확히 드러내 보여주고, 더 빡세게 싸울 테니까. p246

 

온건하게 할 때는 되지도 않더만, 목숨을 걸고 직접행동을 해가지고 결국 이후에 정말로 이동권 보장을 실질화할 수 있는 근거를 얻어낸 거야. p255

 

저희 그동안 셀 수 없이 많은 농성을 해왔는데요. 그중에서도 가장 길게 뻐틴 거는 장애등급제/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장애인 탈시설이라는 3대 요구를 걸고서 광화문역 지하통로에서 2012년부터 시작한 농성이야. 이 농성은 1842일이나 지속이 됐거든요. p256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1994년에 멕시코에서 빈곤이나 억압, 차별 등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었던 치아파스 선주민이 어떤 사람이 연대를 오니깐 이렇게 말을 했대요. “만약 당신이 나를 도우러 여기 왔다면 그건 시간 낭비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과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 왔다면 함께 일해봅시다.” p298

 

감히 말을 할께요. 우리는 이 세상의 속도를 멈춰가면서 우리 해방만 쟁취해내고 있는 게 아니에요. 세상이 정상적이라는 기준, 하지만 알고 보면 굉장히 야만적인 기준을 벗어나서 될 수 있었던 나비가 꽃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듯이, 우리는 이 폭력적인 세상의 기준을 바꿔낼 수 있는 씨앗을 이 사회 곳곳에 조금씩조금씩 흩뿌리고 있는 거죠. p3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