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e&There/일본(1989)

[일본땅을 디디며(1989)] 오오사까

truehjh 2006. 12. 1. 23:28

1989.09.16 - 오오사까


내 생애 첫 번째 국외여행지는 일본이다.

새벽 5시에 기상해서 준비를 마치고 떠나 김포공항에 7시에 도착했다.

짐을 맡기고 환전을 하고 출국수속을 마친 후 9시 이륙하는 오오사까행 KAL을 탔다.

창으로 내다보이는 하늘은 신비로웠다.

구름... 뭉게구름... 솜 같은 느낌의 하얀구름 속으로 빠져들 것만 같다.


오오사까에 내렸다.

내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내 나라와 비슷한 도시, 비슷한 건물, 비슷한 거리, 비슷한 얼굴들이다.

간판의 글씨, 들려오는 소리, 우측통행규칙 등이 다를 뿐 이국이라는 냄새가 나지는 않았고

같은 하늘 아래로 잠시 비행기를 타고 옮겨왔을 뿐인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러나 조금 편한 것은 있다.

남이라는 사실 하나로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이지 않고 의식 자체가 자유롭게 흘러간다는 것이다.


오오사까는 우리의 부산 정도의 도시로 상업도시라 한다.

이곳에는 히데요시의 성이 있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또미 히데요시가 살던 성을

개축하여 보존한 것인데 8층으로 되어 있으며 그 시대의 유물이 보관되어 있었다.

<대망>을 읽었다는 사실이 나를 무척 뿌듯하게 만든다.

막부시대를 알고 있으므로 해서 나는 그 성을 다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저녁은 중국식으로 하고 쇼핑을 했다. 아이쇼핑이었지만 살만한 것도 없었다.

일어를 모른다는 것은 부끄러움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 논리 역시 실용적이지 못한 내 나태함의 합리화일 뿐이다.

같이 온 친구들의 힘겨워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새삼 아버지의 걱정이 기억난다.

“거... 꽤... 따라 다닐 수 있갔네?” 아버지다운 걱정이었다.

“일행 중 반은 장애인인걸요?” 내 대답에 아버지는 안심하셨을까?

일본에서의 첫날밤에 룸메이트와 ‘정신적’이라는 말과 ‘신’의 개념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그녀는 ‘덩어리’로 보고 나는 ‘근본’으로 보는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