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t&Fiction/장년시대(2005~2014)

e갱년기수첩(7) - 완경

truehjh 2008. 11. 18. 23:15

완경


불과 3~40년 전 우리가 중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성에 대한 이야기는 금기시되어있었다. 여성과 남성에게서 각기 다르게 나타나는 2차 성징에 대한 궁금증이 많아도 성에 대한 지식이나 성을 다루는 매체에 접근이 어려운 시절이어서 남자아이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여자아이들 사이에서는 야릇한 화보를 본다든가 누드집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이야기 속에서만 가능했던 호기심 천국이었다.


요즈음은 초등학교 고학년의 여자아이들이 가슴이 나오고 초경을 시작하면, 많은 부모가  축하하는 말과 함께 파티를 열어 주고 있다고 하니 그만큼 개방되어 있는 사회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초경을 시작할 당시는 요즘 같지 않아서 서로가 부끄러워하며 비밀스럽게 주고받을 수 있는 정보들이었다. ‘누구누구는 언제부터 시작했다더라, 누구누구는 아직도 그것이 뭔지 모른다더라, 누구누구는 심하게 아파서 병원에 갔다더라, 누구누구는 어째서 걸음이 그렇게 되었다더라, 누구누구의 하얀 얼굴은 그것 때문이라더라’ 등등 몸의 변화에 대한 숫한 화제들이 뿌려졌지만 아무도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은 없었던 것 같다.


중학교 3학년 가을쯤에 시작한 나는 또래 아이들보다는 좀 늦은 편이었지만 36년간 별다른 고통 없이 진행되었고, 이젠 그 수고로운 행사가 모두 마무리되었다. 이것을 보통 폐경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어느 여성단체에서는 완경이라는 말을 쓰자고 한다. 여성 고유의 임무를 다했다는 뜻의 완경(完經)이라는 표현을 받아들임으로써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심리적 안정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완성했다는 뜻의 완경! ‘폐경에 대한 새로운 명칭인 완경(完經)이라는 용어는 폐경을 여성성의 완성으로서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담고 있는 신조어이다. 과거에 폐경은 출산 능력이 소멸된다는 의미에서 여성성의 상실로 받아들여져 왔다. 40대, 50대의 여성들이 겪는 갱년기 우울증에도 여성으로서의 인생이 끝났다는 폐경기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감이 커다란 요인을 차지한다. 그러나 폐경은 자연스러운 노화 과정이며 폐경기에 나타나는 안면홍조와 같은 증세들도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러운 변화 과정이라고 보아야 한다. 최근에는 폐경기를 여성의 인생에 있어 새로운 단계로 접어드는 도약기라는 새로운 해석도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해석을 포함하고 있는 용어인 완경은 폐경을 번식의 끝이 아닌 여성성의 완성으로서 바라보는 시각을 제시한다.’라고 어느 용어사전에 나와 있다.


얼마 전 통계청의 발표에 의하면 한국 여성의 평균 수명은 82.4세라고 한다. 여성들의 평균 완경(폐경) 연령인 49세를 빼면 완경 이후 30년 이상의 삶을 살게 된다. 즉 완경 이후의 삶이 전체 인생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 이 때문에 '여자로서 끝'을 의미하는 폐경이 아니라, 여성에게 제2의 삶이 주어진다는 의미의 완경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난 여자로서 완성되고 제2의 삶을 살게 된 것일까? 평균 한 달에 난자 한 개씩 배란되었다고 한다면 36년 동안 4백여 개의 난자가 배출되었다는 계산이 되는데, 그들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그냥 사라져 버리게 했으니 허무하다고나 할까. 인간을 남녀로 창조하신 후에 생식하고 번성하라고 축복하셨는데...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내지 못한 아쉬움과 함께 완경을 맞은 나로서는 여자로서 완성되었다는 특별한 감회 같은 것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고 단지 표면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느낌은 편해졌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