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랑/장애해방

얘들아 !

truehjh 2009. 12. 8. 23:40

 

지난 토요일 정우회 송년모임이 있었다.

도착한 순서대로 앉다보니 짖꿎은 남자후배들과 함께 식탁에 둘러앉게 되었다.

건배를 하는데 나에게 ‘얘들아...’라고 선창을 하란다.

내가 “얘들아... ” 하면서 잔을 들면,

후배들이 모두 우렁찬 목소리로 “네... 형님!” 하면서 응수하는 것이다.

쑥스러우면서도 몇 번을 그렇게 하다보니 한편으로는 재미도 있다.

아마도 남자들이 즐기는 기분이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음주문화에 생소한 난 이 분위기를 잘 맞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난 남에게 음식을 건네주는 것처럼 두 손으로 정성스럽게 잔을 따른다. 그냥 그렇게 된다.

음주문화를 따지는 까다로운 사람들은 나의 그런 모습이 못마땅한가 보다.

후배에게는 한 손으로 병을 잡고 그 잔에 따르면 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두 손으로 정중히... 어떤 사람에게는 한 손으로 거만하게... ㅋ... ㅋ...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주어야 하는지 아직 구분이 잘 안간다.


'나는 음주문화에 익숙하지 못하다.' 뭐 이러한 말로 내숭을 떨려는 것은 아니다.

고상한(?) 척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세살 버릇 여든 간다고 했던가...?

단지 세살 버릇에 속하는 집안 환경의 소산일 뿐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어렸을 때 아이가 자라나는 환경의 중요함을 일깨우는 말이겠지만

그 말의 의미가 50%이상 맞는 것 같다.


옛날 옛적의 일이다.

할아버지께서 술과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하시고 가출(?)하셔서

외아들인 나의 아버지를 무지하게 고생시키셨단다.

그런 이유로 나의 아버지는 술과 도박을 아주 아주 싫어하셨다.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술 ‘주’자가 들어있는 단어인 '주전자'라는 말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셨으니 말이다.

우리 집 식구들은 '주전자'를 '주전자'라고 부르지 못하는 신세(?)로 살았다.

주전자를 '차관(차를 따르는 관)'으로 불러야 했을 정도이니 알만한 친척들은 다 안다.

 

어느날 누구의 잔치날인지 기억할 수는 없지만 우연히 술떡을 먹어 보게 되었다.

특이한 향과 함께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 참 좋았다.

그래서 왜 그런 떡을 못 먹게 하셨을까를 의심해 본적은 있다.

지금은 증편이라는 그 떡을 아주 즐겨먹지만...

나는 대학에 가기 전까지는 술병을 만져본 적도 없을 뿐 아니라,

술이라는 종류를 마셔보거나, 냄새를 맡아 보거나, 자세히 본 적도 없다.

물론 예외는 있다. 교회의 성례식 때이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무렵 입교교인이 되었다. 교회에서 행하는 입교예식은

유아세례를 받은 아이들이 커서 자신의 의지로 교인이 되겠다고 서약하는 예식이다.

이 예식을 통과하면 성례식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내가 입교교인이 된 이후에 성례식에 쓰이는 포도주를 마셔보았는데

그 몇 번의 경험을 음주의 범위에 넣을 수는 없다.

나에게 그것은 술이 아니라 하나의 예식일 뿐이다.

지금은 건강상의 이유로 혹은 친구들과 어울려 이런저런 술들을 마시기는 하지만 즐기지는 않는다.


또 한 가지... 난 아직 화투를 잘 모른다.

고스톱이라고 하나... 우리 집에는 그 흔한 화투 한 장이 없었다.

난 다리가 부실하다는 이유로 친척집이나 친구집을 잘 다니지 않아서

화투놀이 문화에 더욱 접할 기회가 없었다.

물론 이것도 예외가 있었다. 서양카드는 통과였다. 아니 오히려 권장하는 편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랑 트럼프놀이를 하며 놀았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고작해야 카드 뒤집어서 숫자 맞추기... 변형된 세븐브릿지 정도였지만...

런 이유로 우리집 남자 형제들은 카드에 강한 것 같다.  

화투만 도박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고 서양카드도 도박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간과하셨던 아버지...

트럼프놀이는 아이들의 머리를 개발한다고 믿으셨던 그 단순한 아버지가 그립다.

 

그리고 이쯤에서... ㅎ...ㅎ...

음주와 화투놀이를 빼고 무슨 재미로 살고 있느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변명할 말은 없지만

‘얘들아!... 난 나대로 살아가는 재미가 있단다...’라고 말할 수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