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t&Fiction/생일일기

e[바람소리] 쉰다섯 살의 그녀에게

truehjh 2013. 10. 28. 18:19

 

허허로운 미소가 빛나던 그녀에게...


많은 사람들이 가고 있는 길에서 조금은 비껴 나와

아직 길이 만들어지지 않은 풀숲을 걷고 있는 그대를 보았습니다.


화장기 없는 그대 얼굴의 허허로운 웃음 속에는

잔잔히 피어나는 여유로움이 있었습니다.

그대는 걷다가 잠시 머물러 제비꽃도 만져보고,

강아지풀을 뜯어 혼자서 잼잼놀이도 하면서 미소 짓고 있었습니다.

흰색 머리카락과 잔주름 가득한 연륜이 부끄러운듯

토끼풀 반지를 끼고, 풀꽃 목걸이를 걸치고 있는 그대 모습은

아이들 같은 순진함으로 채워 있었습니다.


이제까지 그대는 완벽하지 못한 체력을 가지고도 엄살 부리지 않고 잘 버티어 왔습니다.

세상에게 헛발질 하지 않고 자신을 더욱 담금질하며 꿋꿋하게 살아왔습니다.

청빈한 수도생활 같은 삶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는 소박함이 바로 그대의 힘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대의 행복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흔적을 모아 이웃들에게 선물할 그림을 만들고 싶다던 그대...

그것도 욕심이라며 말끝을 흐리던 그대의 목소리의 애잔함이 안타까웠습니다.

곱게 물든 단풍과 미세한 바람에 흔들리며 떨어지는 낙엽에게 말을 걸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그대를 보며 지난 세월에 강한 의지가 힘겹게 느껴졌습니다.

예전 같지 않은 육체와 정신이 그대를 힘들게 하더라도 너무 슬퍼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10년 후에도 살아 있다면...

지금보다 조금 더 소박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 그대에게 다시 편지를 쓸 것입니다.

그때까지...

부디...

아름다운 미소 짓고 살아가십시오.

 

 

'Fact&Fiction > 생일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_ 쉰일곱 번째 생일  (0) 2013.11.09
_ 쉰여섯 번째 생일  (0) 2013.11.09
_ 쉰다섯 번째 생일  (0) 2013.10.19
_ 쉰네 번째 생일  (0) 2013.10.08
_ 쉰세 번째 생일  (0) 2013.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