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지 않는 눈물이 슬픈 이유는...
완전히 포기하지 못한 빈자리에 슬픔이 찾아온다. 기대하지 않았던, 아니 예기치 못했던 감정인 슬픔이 살포시 내려앉으면 그 깃털 같은 무게에 마음이 무너지고 만다. 인생의 꽃봉오리에서 멈춰버린 삶이라고 한숨짓고 있는 이 밤에, 건조한 눈망울이 촉촉이 젖어들고 있는 이 밤에, 누군가가 한마디 말이라도 건네준다면 금방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은 이 밤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목련꽃잎이 우수수 떨어져 내릴 것 같은 이 밤에 느껴지는 진한 슬픔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엔 소리 없는 파장만 번져갈 뿐 눈물은 쏟아지지 않는다. 이토록 마음 아프고 상해도, 서럽도록 가슴 시리고 아려도, 눈물 되어 떨어지지 않는 나의 눈물이 나는 참 슬프다.
지금 이 순간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위로의 말 한마디, 옆에 있어줄 친구? 아니다. 금방 사라지고 말 그런 것들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 내가 진정 가지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발에 맞는 구두, 통이 적절한 바지, 도수 맞는 선글라스? 아니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그런 것들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 내가 진정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바느질, 아프리카 여행, 그림? 아니다. 그냥 하면 되는 그런 것들이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원하는 것이, 가지고 싶은 것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아니다. 알고 있다. 그냥 아무에게나 방해받지 않고 목 놓아 아주 큰 소리로 울고 싶을 뿐이다. 의식 밑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내 진한 슬픔과 서러움을 쏟아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의 육신이 서럽고 서러워서, 나의 외로움이 진하고 진해서, 지치고 힘겨울 때는 엄마에게 무거운 짐들을 내려놓고 한판 승부를 벌이곤 한다. 사실 얼마 전에도 그랬다. 연로하여 힘없는 엄마에게, 엄마의 가슴에 생채기를 내버렸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나의 이 서러움을 엄마 그대에게 쏟아 놓았다. 뻔뻔한 내 이기적 본능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는 가슴을 후벼 파는 언어로 화풀이를 다 하고 또 더 했다. 나의 고통이 엄마 탓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일제 강점기와 전쟁을 겪으며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왔다고 말씀하시는 엄마보다 내가 더 힘들었다고, 내가 더 어려웠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부끄럼도 없이 오히려 당당하게 투정했다. 그래도 될 것 같은 유일한 존재인 엄마에게 말이다.
물론 엄마는 나의 이런 무례함을 다 받아 주는 다감하신 분은 아니다. 속으로 가슴 아파하시지만 자존심이 강한 분이라서 같이 화를 내시거나 모르는 척하신다. 아니, 어쩌면 딸의 설움과 외로움이 너무 안타까워서 마음을 숨기고 계시는 것일 수도 있다. 난 그걸 잘 알면서도 그렇게 끝까지 가보는 것이다. 한참 있다가 늙은 딸의 눈물을 보고서야 ‘내가 미안하다... 어미인 내가 네 투정을 다 받아 주어야 하는데...’라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엄마... 나의 엄마... 낙엽 같이 가벼워진 우리 엄마... 엄마가 미안한 것이 아니라 내가 미안합니다. 내가 해결 못한 것들을 엄마라는 이름의 그대에게 넘기고 있으니 그것이 나와 엄마의 슬픔입니다. 그리고 나와 엄마의 슬픔의 근원은 내가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라고 소리 없이 중얼거려본다.
지난날에는 완전한 자유를 얻을 수 없는 내 몸의 조건이 슬픔이었다. 내가 가진 장애라는 조건이 미래를 만들어 가는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늘 불만이었다.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다 힘든지 아느냐고 늘 불평했다. 장애로 인해 나의 인생이, 나의 삶이 비틀어져버렸다고 늘 억울해했다. 내가 진정 원했고 가지고 싶었고 하고 싶었던 것은 장애로부터 해방되는 것이고, 장애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고, 장애로부터 벗어난 삶을 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너무 어려웠다. 맘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장애인권을 부르짖는 장애운동의 현장에 발을 디디고 나서야 장애의 문제에서 조금 자유로워질 수 있었고, 진한 슬픔에서 어느 정도 해방될 수 있었다. 아직 완벽한 해방과 자유를 얻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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