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t&Fiction/장년시대(2005~2014)

e시니어진입기(13) - 어른으로

truehjh 2014. 7. 4. 21:15

어른으로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을 어른이라고 한다. 다 자란 사람이라는 것은 몸이 더 이상 자라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겠지만, 우리는 보통 마음이 다 자라서 넉넉한 그런 어른을 기대하게 된다. 다른 사람을 너그러이 품을 수 있는 어른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 나부터도 어른의 역할을 잘하며 산다고 말하기가 부끄럽다. 특히 세월호 참사 이후 어른이라는 말에 큰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어른들이 할 일, 어른이면 해야 할 일 등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생각이 계속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가는,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아이들을 충분히 자라게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어른들의 책무이며 의무라는 점에서 생각이 멈춘다. 결국 자기 일에 책임을 지는 어른이야말로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사람일 것 같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아이들과 아이를 잃은 부모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먼저 하늘나라로 간 아이들과 그 아이들이 남긴 유품들의 영상이 눈에 아른거려 가슴에서 피눈물이 나지 않겠는가. 부모일 뿐 아니라 어른으로써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한 것이 얼마나 가슴 아플까. 침몰하는 배 속에서 어린 학생들이 찍은 동영상은 우리들의 마음을 찌른다. 끝까지 보기가 너무 힘겹다. 부모들은 오죽하랴. 보기 괴로운 것이 또 있다. 배를 버리고 먼저 탈출하는 선장과 선원의 모습이다. 해경이 도착하고도 배 속에 있는 아이들을 적극적으로 구하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성경말씀이 아니어도, 살아남아서 죄송하다는 생존한 아이들이 피눈물이 아니어도, 우리 모두의 가슴에 피멍이 든다.

 

무엇이 잘 못된 것일까. 정의롭지 못한 사회가 아이들을 죽인 것이다. 그런 사회를 만든 책임은 누구한테 있는 것일까. 세월호 대형 참사의 원인을 무리한 증축과 과적을 실행한 기업의 탐욕에서 찾기도 하지만 그것만이 궁극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또한 이 책임을 모두 권력집단의 잘못으로 돌리면 우리의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는 것일까. 세월호 침몰의 근본적인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구조 과정에서의 문제점, 정부 재난관리시스템의 부실과 무책임, 정부의 언론통제 및 사건 은폐 의혹, 부패한 감독기관의 관리감독의무 위반, 사고 발생 직후 세월호 승무원들과 해양경찰의 잘못된 초기 대응 등에 대해서 목소리 높여 비판하고 있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책을 찾아내고 책임질 수 있는 어른이 없다는 것이다.

 

퇴선 명령을 내리지 않고 탈출한 이들을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들도 길거리에서 스치고 지나간 많은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오히려 그들의 모습이, 우리 사회가 이르게 된 어떤 심각한 상태를 알려주는 지표일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면 명치끝에 뭔가 걸린 듯이 답답해진다. 사람을 위한 법과 규칙이라면 내가 규칙을 잘 지켜야지, 나부터 법을 잘 지켜야지, 작은 약속이라도 세워놓았으면 지키려고 노력해야지, 원칙을 지키면 손해가 나고 귀찮아질 것 같더라도 정의라고 생각되면 지켜내야지, 안전띠도 잘 매고, 신호등도 잘 지키고, 돈보다는 사람을 더 먼저 생각하고, 나에게 이익이 되더라도 이웃에게 해로우면 포기해야지. 그리고 또 잊지 말아야지를 수없이 떠올려보지만 무력감만 느껴진다.

 

종교는 종교대로, 정치는 정치대로, 교육은 교육대로 어느 한 군데 붙잡고 버틸만한 여지가 남아있지 않은 총체적 난국일수록 각 사람은 자신의 영혼을 잘 가다듬으며, 사람에 대한 예의를 저버리지 말고, 이웃의 마음을 헤아리며 살아가려고 애써야 한다. 그것이 아이가 아닌 어른이 해야 할 책무이며 권리이다. 그것은 너부터가 아닌, 나부터의 시작이어야 한다. 그리고 너무 안타깝고, 미안하고, 부끄럽고, 속상해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낼 수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 평범한 일상에서 생명과 정의에 대한 책임감을 가진, 무뎌지거나 잊지 않는 용감함을 가진, 그런 어른으로 이 시대를 살아 나가야 한다.

 

진실이 인양되고 부모와 형제자매와 친구들의 눈물이 마르려면 얼마나 많은 폭풍과 거센 풍랑을 견뎌내야 할까.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응어리들을 풀어낼 수 있으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가야 할까. 나는 잊지 않겠다고 약속한 그 다짐을 언제까지 간직할 수 있을까. 아직 가방에 매달려 있는 노란리본...! 언제 훨훨 날려 보낼 수 있을까. 노란리본을 가방에 달고 다니는 이유는 사람 생각을 먼저 하겠다는 다짐이라고나 할까. 돈보다 사람을 우선 생각하는 삶을 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고나 할까. 노란리본이 처음에는 애도의 의미였는데 돈, 명예, 권위, 체면 등등보다 사람이 우선임을 실천하자는 의미로 내 마음 속에서 진화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