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22.토
이번 여행처럼 잠을 잘 자고 다닌 여행은 처음인 것 같이 느껴질 정도로 오늘도 푹 자고 일어났다. 어제 짐을 다 정리해 놓았기 때문에 아침에 특별히 할 일은 없었다. 식당에서 마지막 조찬을 먹으며 삶은 달걀 한 알과 자두 한 알을 챙겼다. 사실 챙겼다기보다는 안 먹은 음식을 가지고 나왔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하긴 점심시간이 별도로 없으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에 조식 뷔페의 음식이 동이 났을지도 모르겠다. 10시 30분까지 체크아웃후 버스에 올랐다. 나는 기내가방 하나에 모든 짐을 해결하도록 준비했기 때문에 짐도 마음도 간편하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백조의 호수가 있는 노보데비치 수도원 주차장에 잠시 멈췄다. 걸을 수 있는 사람들만 내려 수도원 안쪽으로 들어가고 우리는 버스로 움직여 주변을 돌아보았다. 크램린 남서쪽 모스크바 강변에 위치한 이 수도원은 12개의 탑이 있는 하얀색 석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황실의 가족과 귀족여성들을 위한 수도원으로 17세기 모스크바 바로크 건축양식의 건축물로 유명하단다. 입구 반대편에는 체홉, 고골, 흐루시쵸프, 옐친 등 역사적인 인물들이 잠들어 있는 공동묘지가 있다고 한다.
차이코프스키는 호수에 비친 이 수도원의 모습을 보고 백조의 호수 영감을 얻었다고 하는데, 버스 안에서 내려다본 호수는 그냥 조용하고 차분하게 보일 뿐이었고 영감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았다. 수평의 눈높이에서 호수를 즐길 수 있었다면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가 영감처럼 떠올랐을까. 수도원의 분위기를 놓친 것이 조금 아쉽지만 그냥 통과... 아쉬움이 없는 인생길이 어디 있으랴.
한참을 가다가 갑자기 버스 안이 술렁거렸다. 팀원 중에 한 사람이 수도원 주차장에 남아 있다고 한다. 우리는 밴 두 대와 대형버스 한 대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인원 파악하는 일이 조금 복잡하기는 했다. 교회 목사님과 연결이 되어 모스크바 공항에서 만나는 것으로 일단락 짓고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일찍 도착하여 여유 있게 티켓팅을 했다. 통로 쪽으로 좌석을 변경시켜주겠다는 직원의 친절함에 넘어가 덜컹 자리를 바꾸었다. 당연히 해님도 혼자 앉으면 편할 것이러고 생각했다. 나중에 알게된 이야기지만 해님 옆에 누군가의 좌석이 배치되어서 좀 불편했단다.
출국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여유부리고 있던 우리 몇 명은 녹색줄을 연결하지 못해 우왕좌왕 하다가 겨우 엘리베이터로 가는 통로를 찾아 들어갔다. 시간도 널널하고, 휠체어 배터리도 넉넉하게 남아 있어서 면세점에 들어가 보았다. 러시아 술을 사는 사람도 몇 명 있었는데, 나는 러시아에서 유명하다는 쵸코렛 몇 개 사가지고 탑승할 게이트 앞으로 갔다. 집합장소로 가는 길에는 맥주와 함께 간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 많았다. 혼자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다녔는데... 휠체어를 타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고마운 발... 휠체어...!
대한항공 직원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처리해 주어서 탑승절차도 무리없이 끝났다. 옆자리가 비었다는 생각에 자유롭게 그 쪽의 쿠숀을 가져다가 등 뒤에 받쳤다. 집으로 갈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하고, 기내식으로 매운 비빔밥을 선택했는데 급하게 먹어서인지 딱 걸려서 내려가지 않았다. 메식 거리고, 토하고 싶고, 배가 부글거리고... ㅠ..ㅠ.. 그나마 옆 좌석에 다리를 올려놓을 수 있고, 편하게 화장실 다닐 수 있어서 다행...
2017.07.23.일
우리나라 시간으로 날이 밝았다. 세수는커녕 물 한 모금 먹지 못하고 기내에서 일요일 아침을 맞이했다. 비행기는 예정대로 9시 40분쯤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휠체어가 준비됐다는 호명을 제일 먼저 받고, 입국절차를 마친 후 짐을 찾아 나오자마자 도토리가 보였다. 너무 반가웠다. 현수언니께 인사하고 정리쌤에게 휠체어 인계하고 서둘러 나왔다. 걸어지지가 않아서 도토리의 팔을 붙잡고 간신히 움직였다. 작은 올케는 가방을 밀고, 동생은 차를 가까운 곳으로 가져와 빠르고 편하게 공항을 빠져 나왔다.
어마어마한 비 피해소식이 기다리고 있는 고국이지만 그래도 몸과 맘이 편하게 느껴지는 내 나라 내 가족이 최고다. 동생가족은 1부 예배를 마치고 마중나온 상황이라서 아침을 안 먹은 상태였다. 가는 길에 부대찌개집에 들러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해결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짐 정리도 하지 않고 어제 일본여행에서 돌아온 식구들과 함께 모두 잠에 빠졌다. 저녁까지 자다가 속이 좀 편해지는 것 같아 허기를 달래려고 누룽지를 조금 끓여 먹었다. 그리고 친지들에게 소식 조금 전하고는 다시 잠에 빠져 그 다음날 오후 1시 넘어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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