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가와 미니멀라이프
무언가 새로 시작하는 것이 가능할 것 같기도 하고 불가능할 것 같기도 한 나이 63세에 분가를 통한 독립을 시도했다. 미니멀라이프를 꿈꾸며 말이다. 미니멀라이프(Minimal Life)는 일상의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만 갖추고 사는 생활을 말한다. 무조건 적게 가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불필요한 물건의 소유를 줄임으로써 생활을 단순하게 만들자는 것이다. 과도한 소비를 줄여 경제적인 여유를 기대하는 것과 환경을 보호하는 효과를 얻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에너지를 집중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동의할 만하다. 미니멀라이프가 단순하고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는데 중점을 두는 삶의 방식이라고 본다면,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의 형태와 별로 다른 모습은 아닐 것 같으니 망설일 필요는 없다.
분가를 준비할 때의 마음가짐도 그랬지만 분가를 한 후에도 마찬가지다. 이사할 집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있는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기로 했다. 새로 구입하는 과정을 생략하고 완벽한 독립을 준비하는 전 단계 정도로 여기니 마음도 편했다. 아파트가 아니라서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구조로 개선하고 싶었지만 모든 문제들을 완벽하게 해결하고 분가할 수는 없었다. 집 내외부의 큰 공사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었고, 비용면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으니 턱을 없애고 경사로를 만드는 정도로 마무리했다. 빈 공간에 살림살이들을 채워 넣어야 하는 일 역시 간소화했다. 나답게 살 수 있는 공간이면 된다. 굳이 미니멀라이프를 들먹이며 소박하기 그지없는 내 삶을 변명할 필요조차 없다. 다행히 옛날에 약국을 할 때 받은 식기세트와 공무원 시절에 엄마가 마련해 주신 기본적인 식기들이 잘 보관되어 있었다. 그것들을 가지고 와서 펼쳐보니 새로 구입해야 할 생활용품이 그리 많지 않았다.
가구나 의류나 생필품 등 소유의 최소화가 목표지만, 불필요한 감정들까지도 최소화된 상태의 미니멀라이프가 가능할까. 이미 60년 이상 복잡하고 부요한 현실에 적응되어 있는 나의 삶이라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생각만큼 줄여지지 않는다. 최소한의 것이라는 기준이 정말 최소화되려면 아직 먼 것 같다. 먼저 스스로를 향해 던지는 불만과 불평을 최소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의 나는 스스로 느끼는 초라함 때문에 불만이고 불평이다. 뭔가를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어야 하는데 기대만큼 보다 가지지 못한 나의 현실이 못마땅해서 늘 의기소침해 있다. 드러내 놓고 자랑할 만한 것이 없어서 주눅이 들어 있는 상태다. 그러나 이런 감정들마저 버려야 미니멀라이프를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또 다른 어려운 주제지만 희망이나 욕구의 최소화도 필요하다. 희망이나 욕구는 끝이 없는 것이어서 최소화하기가 쉽지 않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려면 극적으로 정제된 삶을 살아내야 한다.
눈에 보이는 것도 버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버리고, 그렇게 계속해서 버리고 또 버리면 언젠가는 미니멀라이즈드 될 것이다. 그렇게 해 보려고 마음먹고 노력해 보련다. 사실 노력하지 않아도 나이가 들면서 최소화되고 있는 것들이 많다. 인간관계나 사회적 관계망이 그렇다. 최소화하지 않으려고 해도 최소화되는 관계들을 구태여 최소화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을 것인가라는 생각도 들지만 분에 넘치는 것 같은 관계들은 정리할 필요는 있는 것 같다. 또한 분가하여 독립한 후 나머지 생애를 사는 동안 최소한 무엇을 하고 살 수 있는지를 찾아내는 것은 풀리지 않는 숙제였다. 아무리 단출한 삶이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앞으로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희망이나 욕구를 최소화해서 정리해 보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몇 가지 안 된다. 그중의 하나는 나의 삶을 그리고 그 삶에 대한 생각을 기록하며 사는 것이다. 최소화된 꿈이 삶의 기록자라니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이야말로 최대화된 꿈이 아닌가.
'Fact&Fiction > 시니어시대(2015~ )' 카테고리의 다른 글
e시니어진입기(38) - 무인화 바람이 나에게도... (0) | 2018.12.13 |
---|---|
e시니어진입기(37) - 말동무 밥친구 (0) | 2018.09.05 |
e시니어진입기(35) - 63세... 낭만 (0) | 2018.01.19 |
e시니어진입기(34)- 엉뚱하지만 절박한 기도 (0) | 2017.12.18 |
e시니어진입기(33) - 노화와 정신건강 (0) | 2017.10.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