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동무 밥친구
무엇인가 새로운 마음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냥 흘러가는 시간이 너무 무료하고 허무하게 느껴져서다. 다시 젊어진다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들을 참 많이 할 수 있을 것 같다. 망상일까. 이만큼 살고 보니 젊은 시절에 무엇을 하며 살았어야 했는지가 조금 보인다. 역으로 말하면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과 안목을 지녀야만 젊은 날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되는 것 같다는 이야기도 된다. 20대와 30대에는 혼란과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용기와 지혜를 바칠 의미 있는 일이나 가치 있는 일을 발견하지 못하다가 50대와 60대가 되니 어렴풋이 보이는 것처럼, 80대와 90대가 되어서야 지금 60대에 할 수 있는 그리고 해야만 하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 보인다면 그것이 무엇일까. 아주 많이 궁금하다.
내가 놓치고 살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90대가 되어 뒤돌아볼 때 60대에 했어야 하는 일이 보인다면 그것이 무엇일까. 물론 그때까지 살아있다면 말이다. 과연 지금 내가 해야 하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는 주제다. 조금 더 부지런해도 될 것 같고, 조금 더 열정을 내도 될 것 같고, 조금 더 헌신해도 될 것 같은 일들을 찾고 싶은데, 그 실체가 있을까. 있다면 무엇일까. 시간이 지나야 알게 되는 것일까. 행동하지 못하고 지나가야 나중에 후회하는 마음으로 알게 되는 것일까. 그 마음을 미리 읽어낼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 이 순간의 생각으로는 ‘옆에 사는 친구’를 만드는 일인 것 같다. 물론 늙음의 길에 들어선 내 인생길에는 오랜 시간 함께 동행해온 소중한 길동무들이 있다. 외로움을 달래며 삶의 의미를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지만 너무 멀리에 살고 있다. 인생 길동무가 가까운 거리에 살면서, 아니 바로 옆에 살면서 서로에게 말동무 밥친구가 되어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이 어디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지근거리에 사는 말동무 밥친구를 만드는 일이다. 어쩌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해야만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일 수도 있다. 길게 잡을 것도 없다. 10년 또는 그 이후에 필요한 일이 아니고 지금 당장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때 되돌아보아도 가장 의미 있는 일이며 잘한 일이라고 여겨질 것이다.
말동무 밥친구를 만나려면 우선 내가 타인의 말동무와 밥친구가 되어 줄 수 있는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 먼저다. 누군가의 말동무와 밥친구가 되는 것은 지금까지 내가 할 수 있다고 여기던 몇 가지 안 되는 것들 중에 하나였다. 그래서 좋은 사람들과 밥 한 끼 부담 없이 나누어 먹을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을 가지고 살아야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따뜻한 말 한마디 나눌 수 있으면 말동무가 되고, 따끈한 밥 한 끼 같이 먹을 수 있으면 밥친구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 한 가지 명심해야 될 사항이 있다. 모든 사람이 나처럼 말동무 밥친구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더라는 것이다. 난 모든 인간에게는 말동무 밥친구가 있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다. 말동무가 되려고 찾아간다거나 밥친구가 되려고 찾아가는 것은, 어쩌면 내가 지금 당장 원하는 것을 상대방에게 투사하고 있는 행위일 수도 있어서 선뜻 나서기가 어렵다.
그러나 이젠 정말 나 자신을 위해 영리하게 살 수밖에 없다. 남의 삶까지 걱정하며 살 나이는 아닌 것 같다. 그럴 에너지가 없고, 여유도 없다. 단지 지금 나에게 말동무 밥친구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만 생각하자. 그렇다면 어떻게 찾아내고 만들어야 하는가. 밥친구와 말동무가 저절로 만나지는 것도 아니고, 찾아 나설 수도 없지만, 적절한 기회가 생기면 최선을 다 하고 진심으로 마주할 것이다. 젊었을 때 사방에 널려있던 기회들에 만족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렸던 자세를 되돌아보면서, 이제부터라도 우연치 않게 만나게 되는 일들을 무심하게 넘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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