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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밭과 거기 있는 굴을 헷 사람에게서 산 것이니라 (창 49 : 32)

truehjh 2020. 1. 21. 21:23

나에게 있어서 가나안이라는 곳은...

 

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되 내가 내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선조와 함께 장사하라 이 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것이라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밭과 함께 사서 매장지를 삼았으므로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그의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 곳에 장사하였노라 이 밭과 거기 있는 굴을 헷 사람에게서 산 것이니라       - 창세기 49 ; 29~32 -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땅 가나안으로 간다.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을 떠나 가나안으로 간다. 애굽은 물이 넘치는 땅으로 비옥한 땅이고, 가나안은 산과 골짜기로 이루어져 있어 척박한 자연조건을 가진 땅이다. 성서에서는 가나안을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겠다고 약속한 '약속의 땅'과 동일시하여 이 점령을 정당화한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가나안 땅은 구체적으로 어떤 곳인가?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마고 약속하신 땅(50:24),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 사람들의 손에서 건져내어 그들을 데리고 올라가시겠다고 하신 그 땅(3:8)이다.

 

가나안 땅의 대부분 지역은 날씨가 건조하고 산과 바위가 많았다. 그런 의미에서 가나안이란 내가 조절할 수 있는 땅이 아닌, 하나님이 조절하는 땅이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땅이다. 하나님만 바라봐야 하는 땅이 가나안이고 그것이야말로 복된 땅이다. 그렇다면 나에게 가나안이란 어디일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가나안으로 들어왔는가. 지금 현재 내가 사는 삶의 현장이 가나안인가. 그래서 여기서 멈출 것인가. 한 발자국 더 나아가야 하는 것인가. 이것이 문제다. 마음의 소원을 두고 있으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려야 하는지, 아니면 소원 같은 것은 잊고 지금 이대로 감사하며 살아도 되는 건지, 이미 마음은 가 있는데 두려운 건지 겁나는 건지 용기가 없는 건지, 자신이 없는 건지 모르겠다. 미래의 삶을 책임져주시리라는 믿음으로 발걸음을 내디뎌야 하는 건가.

 

내가 나로 살아가는 삶. 내가 원하는 삶은 하나님과 사람에 관한 관심과 사랑을 구체화하는 삶이다. 남은 10년을 진정한 나로 살아가려면, 그리고 그 이후의 삶까지 준비하려면 교회 옆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에 몰두하게 되었다. 나의 영혼을 위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소명 같은 것은 버린 지 오래되었다고 나를 스스로 설득해 냈다. 마지막 결정은 이기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나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마땅한 결정이라는 생각에서다. 교회에서 내가 할 일을 찾지 않기 위해 명분을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교회는 봉사하러 가는 곳이 아니고 예배드리러 가는 곳이라고 허약한 명분을 세웠다. 고향교회로 가기 위한 명분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내가 마땅히 도달해야 하는 가나안이 바로 고향교회일까.

 

나는 나의 가나안을 향해 정진해 왔는가. 하나님이 가라고 명하신 가나안이 나에게 있는가. 스스로 가나안이라고 고집하며 달려온 것은 아닐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헤매기만 한 것 같다. 이제는 소명이나 사명 같은 거 생각하고 싶지 않은 나이다. 그것을 목표로 삼아 지금을 소비하고 싶지 않다. 사명이라고 기다리며 살고 싶지도 않다. 이루어질 일은 이루어질 터이니 지금을 즐겁고 간편하게 살 수 있으면 된다. 그냥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기댈 뿐이다. 다시 나를 생각해 본다. 나는 지금 되돌아보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정착할 새 땅 가나안을 찾고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