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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예루살렘에서 살겠다고 자원하는 사람 (느 11 : 2)

truehjh 2019. 8. 14. 21:28

느헤미야 112절 말씀인데 번역에 따라 약간의 뉘앙스 차이가 있어 모두 적어보았다.

-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자원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백성들이 복을 빌었느니라.

- 예루살렘에 살기로 자진하여 나서는 사람들에게는 백성이 박수를 보내 주었다.

- 스스로 예루살렘에서 살겠다고 자원하는 사람 모두에게는 백성이 복을 빌어 주었다.

 

느헤미야는 타국 왕에게 고용되어 일을 하는 관료였다. 피폐해진 예루살렘의 상황을 전해 듣고 주저앉아 슬피 울었던 그는, 조상이 묻힌 성읍을 다시 세우게 해달라고 요청하여 왕의 허락을 받았다. ‘그보다 내가 한 일은 성벽을 쌓는 일이었다. 내 모든 부하들도 성벽을 쌓는 데 몰두했다. 우리는 사리사욕을 채우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5:16)’ 그리고 말한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여러분의 힘입니다.(8:10)’ 그는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일을 맡아 학자 에스라와 함께 거룩한 일에 열심을 다한 사람이다. 나는 느헤미야를 읽으면서 내 믿음 생활의 중심지이자 고향같은 교회, 도봉제일교회를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어쩌면 주사랑교회를 나온 이후부터 더 진지하게 이어진 생각일 수도 있다.

 

아주 오랜 세월 나는 도봉제일교회를 잊고 살려고 노력했다. 유년시절부터 40대 중반까지의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교회를 그리워할 수도 없게 만든 사람을 애써 무시하면서 선을 긋고 살아왔다. 그것은 나에게 엄청난 불행이었으며, 지난 세월의 나를 포기하게 만든 원흉이었다. 그러나 5년쯤 전에 도봉제일교회의 재건 소식이 들려왔다. 하나님의 은혜였다. 엄마가 그 모습을 보고 돌아가실 수 있어서 감사하고, 같은 경험을 한 우리 형제들은 엄마와 아버지의 일생을 그리고 헌신을 하나님이 돌아보아주셨다는 고백을 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동생집으로부터 분가하려고 할 때에 마땅히 어디에 기준을 두고 거처를 정해야 하는가가 고민이었다. 거주지를 선택할 때 신앙인들은 교회를 중심으로 선택의 폭을 좁히는 것이 대부분인 것 같은데,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마음의 고향같은 교회를 떠올릴 수가 없었다. 모교회의 희년 소식을 나의 삶과 연결짓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너무 많은 걸림돌들이 산재해 있었다. 그래서 친구들 곁으로 가보려고 제주도 또는 서울로 거주지를 옮길 수 있는가에 대한 시도도 해 보았지만 길이 열리지 않았다. 결국은 남동생의 공장이 있는 영태리로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영원한 장소로 확정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거쳐가는 곳일 뿐이라고 나를 다독이며, 독립생활에 적응하느라고 정신을 못차린 상태에서 1년이 더 지났다.

 

얼마간은 아프다는 현상에 집착하다가 조금 헤어나오고 보니, 교회생활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삶의 목표점을 단순하게 제한시키고 살았다는 반성을 하게 된다. 이제 어떤 지향점을 향해가야 할까. 결국은 내 삶의 마지막 부분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하게 되면 찾아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은 다음 정착지를 수영장 근처로 생각하고 있었다. 몸의 건강을 우선으로 생각한 결과다. 70세 중반까지는 어쩔 수 없이 운동을 하며 살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운동하기 편할 것이라는 단순한 목표는 내 영혼의 상태에 대해서 너무 무관심으로 대처하는 것 같아 마음에 차지 않았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삶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공동체를 찾아 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 또한 쉽지 않다.

 

사실 그 사이 교회에 적을 두고 있었지만 참여도가 낮았고, 그런 태도와 맞물려 나의 실생활에서도 정착하지 못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성수주일에 대한 관념은 강하게 남아있어 영혼 없이 교회에 출석하면서 신앙생활에 대한 열정은 사라졌고, 엄마가 다니시던 교회니까 그냥 예배에 참석하는 것에만 의미를 두고 다녔다. 그러는 동안 나의 삶도 영혼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교회와 나의 삶이 점점 더 거리가 벌어졌고, 다시 회복하기 불가능할 것만 같은 시기에 이르러, 다니던 교회에 출석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도봉제일교회를 떠나야했을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 그래도 나이들어 작은 충격을 받기는 했다. 이제 다시 어느 교회에 출석하면서 내 마음을 붙힐 수 있을까.

 

다니던 교회에서 나오면서 신앙생활에 대한 갈급함이 생겼고, 그로 인해 도봉제일교회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교회와 나, 신앙생활과 나의 삶을 되돌아보며 하나님의 백성으로써의 태도를 점검해 보아야 할 때인 것 같다. 늙어서는 시골 작은 교회 옆집에 살면서 그 교회에 참석하다가 생의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다고 늘 말해 왔는데, 도봉제일교회 목사님 말씀에 의하면 도봉제일교회가 딱 그런 교회란다. 그때는 농담처럼 웃음으로 넘겼는데 계속 마음에 남아 맴돌고 있다. 드디어 내 삶의 터전을 옮기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할 때마다 고향교회를 생각하지만, 아직은 아닌가? 언제쯤일까? 3~4년 안에 어떤 결정이 내려졌으면 좋겠다. 또한 어떤 교회든 교회 옆으로 이사할 수 있는 상황으로 이어지는 결정이었으면 좋겠다. 이것이 최근 나의 기도제목이자, 아주 오랜만에 찾은 목표점이다.

 

스스로 예루살렘에서 살겠다고 자원하는 사람 모두에게는 백성이 복을 빌어 주었다. - 11 :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