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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야고보서 1 : 14~15)

truehjh 2023. 2. 21. 14:32

 

나는 하룻밤에 네 잠을 잡니다. 한잠 자다 깨고, 두 잠 자다 깨고, 세 잠 자다 깨고, 네 잠을 자다 깨니 아침입니다. 여러 번 잠을 잤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네 잠을 잤는데 한잠 잔 것만도 못합니다. 아마 이래서 불면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잠이 안 올 때는 티비를 보다가, 음악을 듣다가, 책을 읽다가 혹은 뭔지 모를 잡다한 것들을 생각하다가 잠이 든다고 하지요. 나는 그렇지 않습니다. 불을 다 끄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 그냥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듭니다.

 

잠을 자다 깨면 잠들기 전에 했던 생각들이 다시 몰려옵니다. 오래 묵은 감정은 쌓이고 쌓여 뭐가 뭔지 구별조차 할 수 없는 응어리가 되어 올라옵니다. 풀어낼 실타래는 즐비한데 실마리 하나도 찾지 못해 낑낑대곤 합니다. 어젯밤에도 그랬습니다. 작은 욕심 하나로부터 오는 불안과 답답함을 견디고 있을 때 어릴 적 암송하곤 했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는 성경구절입니다. 욕심에서 비롯되는 허망, 욕심에서 비롯되는 질투, 욕심에서 비롯된 낙심이나 절망 등등이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결국은 사망에 이르게 한다는 진리의 말씀은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재롱떨며 외우던 말씀입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야고보서 1 : 14~15)’

 

욕심을 부리면 결국은 죽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라고 단순하게 믿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욕심이 죄를 낳는다고 하니 어린 마음에 욕심은 참 나쁜 것이고, 욕심을 부리면 안 되는 것이라는 교훈으로 받아들였었습니다. 혼자만 가지면 안 되고 나누어 가져야만 하고, 혼자만 먹으면 안 되고 나누어 먹어야 한답니다.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을 남이 가지려 할 때는 늘 양보하는 것이 착한 어린이고, 주는 사람이 더욱더 착한 사람이랍니다. 그래야만 예수님 사랑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어른들의 말씀에 고민을 한 적도 많았습니다. 정말 그렇다면 예수님 사랑에 대한 욕심을 품는 것도 결국은 나쁜 것이 아닐까라는 질문이 생겨서 그 정답이 늘 궁금했습니다.

 

조금 커서는 욕심을 내지 않는 삶이란 발전할 가능성이 없는 삶이라는 생각에 도달했습니다. 욕구와 욕심을 구별하는 것도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욕심에 대하여 너무 터부시하고 살아온 지난 삶이 너무 아쉬웠습니다. 진정한 나의 삶을 살아내지 못한 것 같아서 불만스럽기도 했습니다. 욕심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거부당한 사건들에 대하여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조금 더 살고 보니 맞는 말씀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욕심이 생기기 시작하면 그것밖에는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탕을 하나 더 받고 싶어지면 울든지, 떼를 쓰든지, 착한 척하든지, 거짓말을 하든지 간에 어떤 반응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평상심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고, 괴롭게 만들고, 안정감과 평화로움을 앗아갑니다.

 

욕심을 품으면 비교하게 되고, 적게 가진 것 같아 불만이 쌓여 괴롭습니다. 사탕을 하나 더 갖고자 하는 것뿐만 아니라, 누구보다 칭찬을 더 받고 싶어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꿈이나 희망이나 소망이나 소원으로 포장된 욕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욕심이란 자기가 소화시킬 수 없는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위한 작은 욕심 때문에 불면의 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칭찬 한 마디에서 비롯된 사소한 욕심이 다시 욕심을 키우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별것도 아닌 그 욕심 하나 내려놓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그것을 못 하고 있는 내가 안타깝고 답답합니다. 예수님만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예수님만으로 만족하는 삶이 가당키나 한가 의구심을 품고 있지만, 가능한 일이기도 할 것 같습니다. 욕심을 내려놓으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