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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픽2수업] 선생님이라는 호칭

truehjh 2024. 5. 28. 11:12

선생님이라는 호칭

 

마지막 자원봉사 기회라 생각하고 시작한 토픽2 시험을 위한 쓰기 수업이 1 3개월 만에 마무리되었다. 모든  수업은 장애여성학교에서 몇 학기 강의할 때의 교안과 토픽2 쓰기 교재들을 참고해서 만든 커리큘럼으로 진행했고, 5월 마지막 주일 수업을 끝으로 하여 미얀마 학생들에게 선생님이라고 불리우던 기간이 막을 내렸다. 참 즐겁고 의미 있었던 시간이었다. 

 

오래전 글쓰기 지도자 과정을 수료했지만, 외국인에게 글쓰기라는 주제를 가지고 수업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전기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상태에서 인터넷으로 연결한 수업을 진행하는 것도 어려웠던 점 중의 하나다. 전기가 들어왔다 나갔다를 되풀이하는 상황에서도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이 참 훌륭해 보였고 고마웠다. 나는 최선을 다해서 마지막 수업을 진행하면서, 첫 수업 시간에 말했던 꿈을 가지라에 대하여 다시 한번 강조하고 마무리했다. 나에게 선생님이라고 불러주었던 그들의 꿈이 꼭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면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제는 그들이 불러주었던 선생님이라는 다정한 호칭이 마지막 추억으로 넘어가야 하는 시간이다. 나는 호칭을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산다. 호칭에서는 인간관계의 근본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기준이 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처음 만났을 때 부른 그 호칭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회적 개인적 위치가 많이 변했음에도, 성장해서 자신의 일가를 형성하고 살고 있음에도, 나는 처음 만났을 때 부르던 호칭을 즐겨 사용한다. 물론 그들이 나를 어떠한 호칭으로 부르고 있는가는 경우마다 다르다. 당연히 가족이나 직장이나 교회나 친구 사이에서 불리는 호칭이 다 다르다. 이름으로 불릴 때도 있고, 직위로 불릴 때도 있다.

 

나이가 드니 나를 부를 마땅한 이름이 하나, 둘 사라지고 있다. 나라는 사회적 존재가 사라지고 있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아니, 새로 생긴 호칭이 하나 있기는 하다. 어머님도 아닌데 어머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릴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어르신이라는 호칭으로 바뀌었다. 아직은 생소하지만 현실이고 사실이다. 사회적 존재라는 관계성은 축소되고 있으니, 생물학적인 존재로만 살아갈 날만 남았는가 보다. 호칭 말고 별칭도 있다. 좋게 말하면 별칭이고 나쁘게 말하면 별명 정도로 이해하면 되는데, ‘프로 걱정러 이 시대의 참 어른이다. 상반되는 표현인 것 같지만 실제로 조카가 붙여준 별칭이다. 소심하게 걱정이 많은 나를, 꼰대여야 하는 나이의 나를 놀리는 말인 것을 안다.

 

여러 가지 호칭이나 별칭 중에는 교회학교에서 만난 학생들로부터 불리던 한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있다. 내가 가르치는 사람이어서가 아니고, 그들이 나를 한선생님이라고 불러주었기 때문에 생긴 호칭이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하고 기쁨을 준다. 젊었을 때 교회학교에서 봉사할 때도 그랬다.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하기성경학교부터 초등부 보조교사로 봉사했는데, 그 이후 대학시절을 거쳐 중장년에 이르기까지 교회학교에서 초등부교사, 중등부교사, 고등부교사, 대학부교사, 청년부교사로 봉사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 순간들이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순간이었던 것 같다.

 

엄마가 정희야라고 불러주실 때 좋았던 것처럼 그들에게서 한선생님이라고 불릴 때 행복감이 밀려온다. 선생이라고 불리는 것이 좋아서가 아니고, 그들과의 추억이 아름답고 행복하게 떠올라서 좋다. 가르치려 하지 않고, 아는척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봐 줄 때, 기다려줄 때 선생님이 되는 것이다. 아직도 여러 해 동안 잊지 않고 스승의 날에 장미꽃을 보내주며 점점 더 깊어져 가는 제자와 선생님의 관계도 있는 반면에,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유효기간이 끝나가는 것 같은 관계도 있다. 지금은 잊혀져가고 있지만, 예전에는 모두 선생님과 제자 사이였다.

 

누가 나를 불러주는 언어에는 의미가 부여되는데 그것에는 책임이 따른다. 나는 한선생님이라고 다정하게 불러주는 이가 한사람이라도 남아있을 때까지는 소중한 관계를 지키며 살아가려고 한다. 나의 이름을 불러주는 이들이 점점 줄어들고, 내가 이름을 불러줄 이들도 점점 줄어들고 있는 이 시점에서 하는 다짐이다. ‘한선생님이라는 호칭도 언젠가는 그리운 추억으로만 남을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