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t&Fiction/시니어시대(2015~ ) 62

시니어 형제들과의 태국 여행

시니어 형제들과의 태국 여행 이번 여름에는 형제들과 태국 여행을 다녀왔다. 4박 6일 일정의 멋진 여행을 추억으로 남기기 위해 티스토리에 여행기도 올렸다. 여행기까지 마무리하고 나니, 진정으로 여행을 마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블로그에 다 올리지 못한 사진들을 정리하면서, ‘추억은 간직하는 사람에게만 소중하다’는 생각을 했다. 사진 위에 나타나는 갖가지 표정들을 보면 그 한순간의 즐거웠던 분위기가 되살아난다. 나이가 더 들어서 여행할 수 없게 되면 블로그에 남긴 여행기들을 읽고 사진을 보면서 기억을 되살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카메라의 발전으로 손쉽게 많은 사진을 남길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태국 여행은 이번이 세 번째다. 첫 번째는 20년 전에 친구 평화, 작은올케와 도토리 그리고 나,..

고장남과 망가짐의 차이

고장남과 망가짐의 차이 영태리로 나오면서 마련한 큰 냉장고가 하나 있다. 처음에는 냉장고가 텅 비어있었다. 어떤 음식이 필요한지, 어떤 음식으로 채워야 하는지를 몰라서였다. 5년이 지난 지금은 이런저런 다양한 음식으로 차곡차곡 쌓여 있어 보아 줄만 하다. 커다란 냉장고를 볼 때마다 뿌듯하다. 안 먹어도 배부른 사람처럼 음식에 대한 허기증이 없이 만족하게 살고 있다. 남을 대접할 수준의 식사형태는 아니더라도 내 몸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는 음식의 종류와 양이다. 사랑하는 지인들이 오고가며 가져다 주는 음식도 있으니, 먹고사는 문제에는 별로 부족함이 없다. 냉장고 덕분이다. 냉동실은 냉동식품이나 밀키트로 가득 채워져 있고, 내가 만든 음식은 소분된 상태로 잘 정돈되어 있다. 비어있을 때는 음..

노인이라는 정체성

노인이라는 정체성 내가 성숙한 어른으로 살겠다는 이성적 선택을 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자신은 없다. 칠순을 향해 가는 나이가 짐스러운 것도 부정할 수가 없다. 내 나이 또래 타인의 모습에 투영해 보면 더욱 그렇다. 본질적이고 보편적인 것에 관심이 늘어나는 나이여야 하는데, 점점 나 자신의 동굴 깊은 곳으로 들어가려는 나이로 살아가는 것 같다. 자신 이외에는 관심이 점점 사라지는 나이로 사는 것 같아서, 나의 삶이 이래도 되는가에 대한 확신이 생기지 않는다. 그렇다고 타인의 삶이 부럽다거나 타인의 삶과 비교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자족하는 삶으로 70대를 살아가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간단하고 포괄적인 해결책은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노년의 삶이 꼭 그렇..

장애인과 노인 사이

장애인과 어른 노인 사이 겨자씨 40주년 행사준비를 마무리하며 장애 해방을 외치던 40년을 정리했다. 그리고 40년이라는 세월을 표지판 삼아 정체성의 터닝포인트를 만드는 계기로 만들어보자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여전히 장애인과 노인이라는 정체성의 선택지 앞에서 방황하고 있다. 내가 장애인으로 살았다는 억울함을 벗어나지 못한 철없는 노인으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모든 편견에서 벗어난 성숙한 어른 노인으로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다. 이러한 갈등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을 의미하기에 안심이다. 즉 이전처럼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한쪽으로 떠밀려갈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용기를 내어 선택하고, 그 선택을 값지게 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어른이라는 노인의 정체성으로 자리매김할 순간이 빨리 다가오기를 기대..

68세... 장애라는 광야를 떠돌던 40년

68세... 장애라는 광야를 떠돌던 40년을 마무리하며... 요즘 계속 머리가 텅 빈 상태에 빠져있는 것 같아 불편했다. 그 이유를 알 수 없어서 허둥대고 있다가, 서서히 마음 저변에서 올라오는 생각 하나를 발견했다. ‘이제는 장애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때가 된 것 같다’라는 생각이다. 내가 나를 놓아주어야 하는 시기가 훨씬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무의식 속에서 장애를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에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이 정신이 번쩍 든다고나 할까. 아니 번쩍 정신이 드는 것은 아니지만 서서히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생각은 아마도 겨자씨 4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기 시작하면서부터일 것이다. 겨자씨는 40년 전에 장애를 가진 여약사 친구들이 만든 모임이다. 가난으로 인해 교육의 기회..

철없는 할머니의 명절맞이

내일부터는 설 명절 연휴가 시작된다. 명절날이 다가오는 밤이면 늘 이렇게 싱숭생숭하다. 막연한 기다림과 외로움의 감정이 소리 없이 밀려왔다가 큰 숨 한 번 내뱉어야 빠져나간다. 명절을 즈음하여 이유 없이 찾아오는 감정이라고 여기며 ‘사람은 누구나 다 외로운 거야’라는 주문을 걸어 나를 토닥인다. 그리고 ‘심심하고 무덤덤한 것이 인생이니 어쩌겠어. 그냥 그렇게 살면서 소소한 행복과 즐거움을 찾으면 되는 거지’라고 중얼거리면서 나를 위로한다. 그래도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불투명한 뭔가가 남아있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낼모레면 칠십이 되는 나이인데도 이런 감정을 붙들고 있는 나 자신이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명절을 맞아 형제들, 조카들, 조카손들을 만날 생각을 하면 묘한 기분이 든다. 행복감..

소울푸드와 소화력

지난 10월 겨자씨 40주년 기념여행을 떠났다가 친구집 방문 겸 2주간을 제주도에 있었다. 여행 중 멀미로 시작해서 소화 안 된다는 말을 달고 살다가 돌아왔는데 집에서도 소화가 안 되는 것은 마찬가지여서, 소화불량을 해결하기 위해서 계속 누룽지를 끓여 먹었다. 그렇게 비실비실 지내다 보니 소화는 되는 것 같은데, 며칠 전부터 머리가 띵하고 뭔가 헛헛했다. 영양가 높은 음식을 먹어야 할 때라는 시그널이라고 여기고, 막내동생이 보내준 LA갈비를 꺼내서 구워 먹었다. 소화가 안 되면 입맛을 잃고, 입맛을 잃으면 먹는 것이 점점 더 부실해지는 악순환을 끊어내겠다는 다짐이었다. 나에게 LA갈비는 일종의 소울푸드다. 언제부터였는지를 굳이 따져본다면 벤츄라에서 김목사님이 구워준 LA갈비를 먹고 힘을 차린 후부터라고나..

액티브시니어의 낭만 출간

액티브시니어의 낭만 출간 나의 일곱 번째 책 을 출간했다. 출간 이후 거의 1년 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글쓰기에 매달려서 살았다. 그런대로 좋았다. 글 아니면 어디다 마음을 두겠는가. 두문불출의 기간이었지만 마음 둘 곳이 있어 감사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감사의 시간이 쌓여서 한 권의 책이 마무리되었다. 수십 번을 읽어봐도 진정한 나를 표현한 글임은 맞는데, 읽을 때마다 횡설수설한 느낌이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너무 나를 솔직하게 드러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글재주가 없어서일까. 글을 쓸수록 점점 부끄러워지는 이유를 찾아내지도 못한 채 전자책 을 내놓았다. ‘지금 여기서 나로 살아있음’이 감사해서 기록한 글이 늙은이의 푼수로 읽힐 것도 같고, 보잘 것 없는 자랑질로 읽힐 것도 같아 신경이 쓰인다...

제주 올레길을 드라이브로

제주 올레길을 드라이브로 해외로 여행 나가기를 좋아하는 동생 가족 덕분에 한때는 여름 휴가라 하면 해외여행을 의미하기도 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요즘은 제주도 여행으로 대체된 것 같다. 아직은 자유롭지 않은 상황이니까 대신에 국내 여행을 하는 것도 좋은 생각이다. 동생은 올레길 완주의 목표를 두고 거의 한 달에 한 번꼴로 제주도를 간다. 벌써 올레길 두 번째 완주를 달성해 가고 있단다. 오빠네도 올레길을 완주하고 요즘은 동해의 해파랑길을 걷곤 한다. 모두가 산티아고길을 걷고 싶은 마음을 품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꿈을 꿀 수조차 없지만 오빠와 동생은 꿈을 이루기를 바란다. 덕분에 나도 가끔 동생 가족의 제주도행에 동승하곤 한다. 이번 6월에도 제주도에 다녀왔다. 올해 들어 첫 번째지만, 작년에는 네 번..

67세... Well-Aging & Well-Dying

67세... 웰에이징과 웰다잉 이어령 선생이 암 투병 끝에 향년 88세로 생을 마감하셨다. ‘2022년 2월 26일 정오경 가족들에게 둘러 쌓인 채 죽음과 따듯하게 포옹하였다’고 그의 아들이 전했다. 아무런 의료적 장치에 기대지 않고, 링겔로 최소한의 영양만 취하시다가, 죽음을 대면하는 듯 아주 평화롭게 마지막 숨을 조용히 쉬셨다는 설명이었다. 항암치료를 거부했고 일체의 치료 약을 먹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마지막 시간을 지켰던 아들이 전한 이야기가 마음에 남는다. 병원 중환자실에 갇히지 않고, 생명을 다하는 순간까지 집에서 해를 쬐며 삶 쪽의 문을 활짝 열어놓았다고 한다. 그것은 미련이 아니고 책무였단다. 진짜 죽음은 슬픔조차 사라진 상태라는 그의 말에 공감한다. 삶과 죽음 그리고 그 너머의 어떤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