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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마음에서 피는 꽃] 세한도와 송백(松栢)

truehjh 2007. 1. 4. 00:04

세한도와 송백

 

어느 날 신문의 문화면을 장식한 그림 한 폭이 내 눈에 들어왔다. 한겨울의 한파를 온몸으로 받으며 말없이 세월을 보듬고 서있는 몇 그루의 송백과 그 사이에 있는 집 한 채를 보고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 사실 나는 그때 그 그림의 내력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그림 속의 여백이 너무 좋아서 눈길을 떼지 못하고 있다가 조금 후에 그림 아래의 기사내용을 읽어 보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 그림은 추사의 세한도였다.

 

세한도는 조선 후기 그러니까 1844년 헌종 10년 서화가 김정희의 문인화로써 그의 제주도 유배시절에 찾아 온 제자 이상적에게 그려준 그림이라고 한다. 탐욕과 권세에 아부하지 않고 오직 의리와 지조를 지키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고 굳게 믿었던 유학자 추사가 유배된 자신을 찾아 준 제자에게 감사의 뜻으로 그려준 그림으로써의 가치도 있지만 세한도의 높은 품격과 사제간의 깊은 정에 감격하여 문사들이 이를 기리는 시문을 직접 써서 남겼다는 것에 가치성이 있다고 한다.

 

세한은 설 전후의 추위라는 뜻으로 한겨울의 심한 추위를 이르는 말이다. 세한도는 또한 수묵으로 그려졌으며 소재와 구도가 지극히 간략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옆으로 긴 화면이 안정감을 전해 주는 구도이다. 겨울바람이 휩쓸고 간 자리에 허름한 집 한 채를 사이에 두고 그 좌우에 소나무와 잣나무 네 그루가 서 있으며 나머지는 온통 여백이다.

 

빈틈과 미완성 같은 단순함이 나에게 주는 감흥은 대단했다. 그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나의 느낌이 그 빈틈과 여백에 채워지면서 뭔가 새로운 그림, 새로운 삶이 완성되어 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리하여 빈 공간은 자기를 내세우거나 자랑하지 않는 겸손함으로 나타나며, 오히려 그것을 통해서 작가의 농축된 내면세계를 남김없이 드러내는 것 같다고 느껴진다.

 

소나무나 잣나무 등은 추운겨울에도 변색하지 않아서 절개를 지키는 것을 상징하거나 비유할 때 많이 사용되는 소재다.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꿋꿋이 자라나는 소나무는 참다운 인내와 절개, 그리고 늠름한 기상과 높은 이상의 표상으로서, 이는 누구나 기억할 수 있는 소나무라는 동요에 잘 나타나 있다. ‘소나무야 소나무야 언제나 푸른 네 빛... 쓸쓸한 가을날이나 눈보라치는 날에도... 소나무야 소나무야 변하지 않는 네 빛...’ 이 노래가 우리 마음에서 잊혀지지 않는 이유는 독야청청하는 소나무의 절개에서 한국인의 정서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절개를 지키며 살기 힘든 이 시대에 뭔가 희망을 보고 싶은 바람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년 초가 되면 우리 주변에서도 이러한 나무들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종종 백자에 소나무 줄기 또는 잣나무 줄기를 꽂아 놓고 국화나 또 다른 꽃들과 함께 어우러지게 분위기를 만들어서 집안을 꾸며놓은 장식들이 눈에 잘 띈다. 나의 개인적 취향으로는 진초록의 잎이 달린 소나무 줄기와 노란국화를 함께 꽂아 놓은 작품을 아주 좋아한다.

 

다시 그림으로 돌아가자. 나는 세한도를 만난 이후의 얼마간은 동양화를 그려보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 잡혀 있었다. 그래서 중고교시절 학교에서 서예를 배울 때 사용했던 붓과 벼루를 꺼내 놓고 어떤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동양화 그리는 법을 배워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나는 그 결심을 실행할 만큼의 능력을 키우지 못했다.

 

그 결심은 그냥 내 마음의 꿈으로 남아 있을 뿐 아직 묵향이 묻어 있는 그림을 한 장도 그리지 못했다. 나도 언젠가 그와 같은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지만 혹시 내가 붓을 잡으면 불경을 범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주저하기도 한다. 그림은 그렇게 감히 가까이 다가서기 두려운 대상으로 내 삶에 남아있지만 아직도, 언젠가는 다가서 보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올 한해에 해야 할 일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다가서기가 두려운 여러 가지 바램들이 누구에게나 다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막연한 희망들을 실현해가는 용기를 내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런 용기가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새로운 한해가 펼쳐지는 때이기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