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8.03
새벽 3시 반쯤에 잠을 깼다.
물갈이 상태가 시작되는 것처럼 속이 부글거린다. 어제 밤 서늘한 암벽공연장에 한 시간 이상 앉아 있었던 것이 원인 중에 하나인 것 같다. 그곳에서도 으슬으슬 춥고 뱃속이 불편했었다. 4시에 열기구를 타기로 예약되어 있는데 이런 상태로는 불안했다. 열기구를 타러 갈까말까를 잠시 고민하다가 가볍게 포기했다. 위장상태가 좋지 않은데다가... 열기구 바구니에 올라타는 것도 자신이 없고... 열기구 착지 시에 착지자세가 가능하겠냐고 진지하게 묻던 가이드의 표정도 생각나고... ㅠ... ㅠ... 열기구를 타보는 것이 버킷리스트 상위에 올라있다고 하는데 지금의 나에게는 큰 의미가 없는 사항이다.
도토리를 깨워서 컵라면 3개를 챙겨주고 고모는 못가겠다고 일러서 내보냈다. 나는 비상약으로 준비한 에세프릴 두캅셀을 삼키고 잠시 후에 다시 잠을 청하여 여유있게 피곤을 풀었다. 7시 아침은 거르고... 8시30분에 일어나 떠날 준비를 했다. 오늘 저녁에는 이스탄불로 가기 때문에 짐들을 잘 정돈해서 단단히 싸가지고 나갔다. 내일은 하루종일 이스탄불을 돌아다니다가 터키를 떠나는 날이다. 지금까지 고된 날들이었지만 멋진 추억을 간직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좋다.
우리 일행은 신과 인간이 빚어낸 최고의 예술품이라는 괴레메골짜기로 이동했다.
괴레메는 ‘보이지 않는’이라는 뜻인데, 멀리서 지나가면 골짜기는 보이지 않고 가까이 다가가면 골짜기가 보이므로 붙혀진 이름이란다. 자연이 만들어낸 환상의 기암괴석들이 펼쳐져있다. 열기구를 탄 사람들은 아마도 이 카파도키아 지역 위를 날아다니며 탄성을 터뜨렸겠지... 터키 중부 아나톨리아 고원에 위치한 가파도키아는 화산지대로 오랜 세월 침식작용에 의해 생긴 기묘한 형상의 바위들로 가득하다. 이 독특한 지형은 동서양을 잇는 실크로드의 교역로였다고 한다. 암굴은 약탈의 위험을 피해 들어온 사람들의 주거지로 이용되기 시작했으며, 박해로 인해 숨어든 그리스도교인들의 은신처가 되기도 했다. 또한 4세기 무렵부터는 그리스도교의 수도사들이 암굴을 파고 살았다고 한다. 여기에 1천개 이상의 바위교회가 있었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살다갔는지 짐작할만하다.
괴레메계곡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작은 마을 우치히사로는 뾰족한 바위라는 뜻의 천연요새로서 비둘기 집으로 가득한 주상복합이다. 그당시 비둘기 알들은 영양가 높은 식품이었고, 비둘기 배설물은 비료와 연료로 쓰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일부로 비들기집을 파놓았다고 하는데... 눈앞에 전개되는 전경이 신기롭다.
괴레메골짜기를 떠나 파사바골짜기로 가는 도중에 터키석 파는 곳에 들렀다.
청록색의 터키석은 정말 매력적이다. 차가운 듯 하면서 깊게 끌리는 멋... 나쁜 남자 같은 터키석에 눈길이 갔지만 외면하고 나왔다. 그 보석상 아래층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허전한 마음을 달래며 항아리케밥을 먹었다. 한국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케밥이라고 하더니 맞는 말인 것 같다. 간만에 맛있는 점심식사였다.
스마프동산으로 유명한 파사바계곡...
이 독특한 풍경들은 이국적인 아니 몽상적인 느낌을 준다. 동화의 나라에나 있을 것 같은 암석들이 이 잔잔하고 광활한 대지 위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버섯모양의 바위들과 그 속을 파서 만든 교회에서 사진도 찍으며 마치 내가 다른 별나라에 있는 것 같은 분위기를 즐겼다.
언덕 위로 올라간 사람들이 내려오기를 기다리며 시간이 남아 기념품가게에 들어갔다.
부인이 둘 있다는 상인은 이런저런 우스개소리를 하며 물건을 팔고 있었고, 도토리는 엄마, 아빠와 함께 상인과 흥정을 하며 올망졸망하고 예쁜 팔찌를 여러개 샀다. 친구들에게 나누어주겠단다. 길 건너편에는 100% 오렌지쥬스를 만들어 파는 상가가 있다. 쥬스 한 잔에 한 명만 유료화장실 사용권한이 있다는데 두명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흥정이 붙은 것을 구경하면서, 우리는 쥬스를 세 잔 주문한 후에 두 명만 화장실을 사용했다. 나머지 한 사람에게 사용하라고 하니까 사양한다. 이런 풍경 또한 여행의 즐거움이 아닐까... 테이블에 앉아서 담소를 나누며 자유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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