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선인장, 너도 아는구나...
베란다에서 오래된 화분들을 정리하다가 선인장 가시에 찔렸다. 나는 잔가시에 찔리는 순간 모든 동작을 멈췄다. 그 짧은 순간에 좀 우습지만 식물도 감정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너도 아는구나... 내가 미워했다는 것을...’
솜털 같은 잔가시가 오른손 엄지와 검지와 중지 그리고 손바닥에 박힌 것이다. 커다랗고 뾰족한 가시를 가지고 있는 선인장이었으면 처음부터 조심했을 텐데, 그리고 그렇게 큰 가시들이 손에 박혔다면 단번에 뽑아내면 되는데, 잘 보이지도 않는 크기의 가시들이 박혔으니 그 상황이 더 난감하고 당황스러웠다.
오늘 나를 찌른 선인장은 몇 년 전에 어린 조카가 그의 친구로부터 받은 선물이다. 나는 이 화분을 볼 때마다 ‘내 취향이 아니야... 내 눈엔 미워...’라고 중얼거렸다. 내 것도 아니면서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었다. 줄기가 삐죽삐죽 울퉁불퉁 나와 있는 모양이 그리 단정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도 아닌 선인장이 단정해 보여야 한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나를 설명할 수가 없지만 하여간 내 눈에 예쁘게 보이지는 않았다.
바로 그 선인장이 이번 겨우내 베란다에서 지내면서 추위에 얼었었나보다. 가느다란 줄기들이 다 마른 상태로 늘어져 있었다. 잡아당기면 가볍게 뿌리가 뽑힐 것 같아서 손으로 잡는 순간 따가운 감촉이 손끝에 전달되었다. ‘어이쿠...’ 잘 못 건드린 것이다. 안쓰러운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그들의 최후를 다루었어야 하는데, 눈에 자꾸 거슬려서, 보고 싶지 않아서, 애처러워 하는 마음도 없이 처리하려고 하니 그들이 나에게 최후의 저항을 하는 가보다. 내가 그들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단 말인가.
손을 비비면 깊숙이 박힐 것 같아 얌전히 한 손을 위로 살짝 들어 올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돗수 높은 안경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다시 밝은 베란다로 나와 햇빛을 받아 반사하는 작은 가시들을 뽑아냈다. 족집게로 하나씩 뽑아낸 가시털들이 실내에서 날아다니게 될까봐 젖은 휴지에 하나씩 붙이면서 다시 뽑아내기를 20여개... 그러나 아직도 다 뽑힌 것은 아니었다. 손가락의 지문과 지문이 서로를 겨우 느낄 정도의 압력으로 살살 비벼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가시들이 느껴졌다.
보이는 것들은 다 뽑았는데도 까칠 거리는 것들이 아직 손끝에 남아있는 것이다. 밝은 빛에 그 부분을 집중해서 비추어보니 가시 끝의 정체가 살짝 드러났다. 마치 피부에 있는 아주 짧은 털처럼 보인다. 그것들을 조심해서 뽑아내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내가 너를 예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너도 알고 있었구나... 미안해... 정말 미안해... 다 살고 간 너의 모습을 보고 애처러워 했어야 하는데...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치우고 싶었던 거야... 귀찮아하는 마음으로가 아니고 정중하게 너를 다룰 것을... 함부로 보내려고 해서 미안해...’
생명은 어떠한 모습으로 존재하든 살아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사랑받고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과 함께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을 향한 나의 마음이 따스해야 한다는 진리를 잔털 같은 가시를 뽑으며 다시 한 번 되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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