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ography/장년시대(2008~2019)

e시니어진입기 - 또 하나의 태도

truehjh 2019. 1. 17. 14:10

또 하나의 태도

 

정체성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나를 규정지을 수 있는 커다란 틀이 한 가지 있다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다. 그리스도인(Christian)이라는 말이 유래한 그리스어 ‘Christianos’그리스도(Christ)’, 종 또는 추종자나 일당을 뜻하는 어미 ‘-ianos’가 붙어 이루어졌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에 속해 있는 사람,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쟁이라는 표현과 같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도 비아냥거리거나 조롱하고 경멸하는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애초에 그 의미가 무엇이었든 간에 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살고 있다. 그리스도인인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이름으로,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저절로 주어졌지만 내 평생 이루어 내고 싶은 이름이기도 하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아니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은 누구나 지켜야 할 계명이다. 나 또한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는 지향점을 가지고 살고 있다. 그렇다면 나에게 있어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어떤 의미인가.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고 있으며, 이웃을 어떻게 사랑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하나님과 이웃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그것은 나에 대한 곧 나의 삶에 대한 태도이기도 하다. 내 삶을 돌이켜보면, 그리스도인이라는 틀을 벗어나서 살아본 적은 없다. 계명을 지키기 위하여 투쟁하고 헌신하고 희생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살겠습니다라고 고백할 절절한 순간을 만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에 먹칠을 하며 살고 싶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자랑하며 살고 싶었다.

 

나는 주일마다 교회에 나가서 예배드리고, 내 수입의 십 분의 일 이상을 헌금했다. 이것은 나를 짓누르는 강압적인 요구나 올가미가 아니었다. 회중과 함께 드리는 예배에 참석하면서 나의 영성을 돌보았으며, 나의 이익이 아닌 것을 위해 쓰이도록 헌금할 수 있어서 오히려 즐겁고 감사했다. 매일 일정 분량의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표현하고자 노력했다. 하나님께 드리는 일종의 사랑고백인데 그보다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이웃사랑 실천이다. 넉넉하지 못한 상황에서 공부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형편이 어려운 교회학교 학생과 청년들이 나의 이웃이었고, 장애인 당사자로서 보면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장애인들이 나의 이웃이었다. 약사의 눈으로 보면 법적으로 보장을 받지 못해 의료혜택을 받기 어려운 외국인 근로자도 나의 이웃이었다. 혹 가다 강도 만난 것 같은 위기의 이웃들도 있었다. 이 모든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삶이라고 생각하며 기회가 생길 때마다 적극적으로 나서기는 했지만 지속적인 행위로 이어가지는 못했다.

 

지금은, 나 자신을 돌보는 것도 이웃사랑이라고 여기며 소극적으로 살고 있다. 자기를 사랑하듯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으니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자의적으로 해석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내 주변에 나이 들어가는 형제자매와 가까운 친척 그리고 오래된 친구들과 친지들이 남아있으니, 그들과 어떻게 사랑을 나누며 살아갈 수 있는가가 최근 나의 화두다. 나 자신이 이웃에게 피해를 주는 존재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오히려 이웃을 사랑하는 최선의 방법일 것 같다가도 내가 살아있는 한 누구에겐가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고 싶은 열망으로 이웃 사랑 실천방법을 모색해보곤 한다. 그럴 때마다 오히려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는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먼저 생각난다. 불평불만하면 안 되고, 과거의 영광을 설하면서 가르치려고 해도 안 된다. 나를 내세울 힘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그 힘을 제한하고 통제할 줄 알아야 한다. 이웃에게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서 힘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기 때문에 힘의 사용을 포기하는 기독교적 리더십을 마음에 두고 살아야 한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시니어로 진입하는 시기에 내가 가져야 할 또 하나의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