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점검의 결론 - 변화를 주도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것
60대의 마지막 해인 올해 한 것이 있다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과 달라지는 내 모습을 자가점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오래전부터 관심 가지고 있던 이슈였다. 그런데 실행하지 못하고 살다가 올봄 어느 날 갑자기 아팠을 때 놀라서 작성하고 왔다. 몸이 아파서 홀로 누워있으며 느꼈던 두려움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고독사가 먼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그때쯤 절친이 응급실로 들어가 중환자실에서 생사를 오간다는 소식이 나를 더 자극하기도 했다. 몸도 정신도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가 없을 때를 미리 대비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지만, 살아있는 한 뭔가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 생명을 가진 자들의 의무라는 생각에서였다.
예고할 수 없었던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후에는 자가점검이라는 미명 하에 하루하루 달라지는 나의 모습 즉 늙어가는 모습을 들추어보았다. 나 자신의 변화를 글로 열거하는 동안, 유독 변화에 대한 저항심이 큰 나를 발견했다. 다른 말로 하면 바뀌는 것, 달라지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크다는 말이다. 젊었을 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때는 호기심이 커서 많은 변화를 시도했었고, 쉽게 받아들였었다. 커다란 변화를 계획하고 실행하고 즐기면서 오히려 긍정적인 스트레스로 만들었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예상할 수 없는 변화, 미처 대비할 수 없는 변화, 모르는 사이에 진행되는 변화로 엄청나게 부정적인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나이 들어가는 탓이라고 변명해도 될까. 무엇이든 변하는 것이 두렵고, 적응하기 어렵다. 시간이 가져오는 작고 미세한 변화조차 싫다. 심지어는 잘 정돈된 물건들마저도 흐트러지는 것이 싫어서 그대로 있어 주기를 바랄 정도다. 그러나 모든 생명은 태어나고, 성장하고, 쇠퇴하고, 사멸하며 변화의 과정을 거친다. 물론 생명이 있는 것만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 가만히 멈춰있는 것처럼 보이는 무생물도 실상은 변화하고 있다. 산화되고, 깎이고, 누적되면서 시간의 흐름을 증명하듯 변화한다. 생물이나 무생물 주변의 자연환경도 변화한다. 구름은 흘러가고 바람은 여기저기 부딪힌다. 어느 한순간도, 어느 것 하나도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그런데 어쩌자고 살아있는 내가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는가. 늙음이라는 변화에, 노쇠와 퇴화라는 변화에 맞닥뜨리기 어렵다고 투덜거리고 있는가. 노화나 노쇠라는 변화를 무심하게 받아들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가.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변화여서 불변에 집착하면 안 된다. 변화하지 않으면 정체되고 밀리다가 와해 되고 만다. 아니면 더욱 단단해져서 화석이 되든지. 외부의 힘에 의해서 파괴되고 말 수도 있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나의 모든 것은 변한다는 진실을 가벼운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변하지 않는 것들만 추구하고, 그것에 기대어 산다면 살아남을 수가 없다.
이 순간에도 나의 몸과 마음과 정신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것이 바로 나이 들어감, 늙어감, 노화, 노쇠 등의 변화라고 할지라도, 살아있기 때문에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노화를 지나 노쇠의 단계로 접어든 현상, 죽음에 이르는 길에 들어서고 있는 이러한 변화를 역전시키거나 중지시킬 대책은 없다. 단 한 가지 대처 방법이 있다면 그 변화를 수용하는 것이다. 몸과 마음의 쇠퇴라는 급격한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고 저항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길이 없다는 결론이다.
나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미세하거나 급격한 노쇠현상을 과감하게, 아니 자연스럽게 수용하는 마음의 자세다. 그렇다면 결국 변화에 끌려다닐 것인가, 변화를 주도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다. 즉, 노화에 끌려다니며 변화를 두려워하는 노인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노화라는 변화를 조절하며 주도적으로 적응해 나가는 노인으로 살 것인가의 문제다. 나의 대처 방법에 따라 나의 오늘과 내일, 그리고 얼마가 남아있을지 모를 미래가 달라질 것이다. 달라지는 미래를 주도하기 위해서 삶의 태도와 틀을 다시 셋팅해야 할 때다.
'Fact&Fiction > 시니어시대(2015~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가점검(7) - 달라지는 미래 (4) | 2024.11.04 |
---|---|
자가점검(6) - 달라지는 환경 (0) | 2024.09.14 |
자가점검(5) - 달라지는 일상 (0) | 2024.08.14 |
자가점검(4) - 달라지는 사고방식 (0) | 2024.07.15 |
자가점검(3) - 달라지는 감정 (0) | 2024.06.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