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싹 속았수다
좋은 드라마가 나왔다는 친구들의 말을 듣고, 나도 넷플릭스에 들어가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정말 고생하셨습니다)>를 찾아보았다. 보기 시작한 첫날에 앉은 자리에서 네 편을 끝내버렸다. 그리고 에피소드가 새로 공개되는 금요일 오후를 기다리다가, 호로록 네 편을 다 보고서야 허리 아프다고 하며 컴 앞에서 물러서곤 했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보던 드라마 시청은 어제로 막을 내렸고 나는 뭔가 가슴에 찡하게 남아있는 감정을 글로 써보려 하는데, 아마도 그 감상을 다 표현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 우선 생각나는 대로 적기로 했다.
<폭싹 속았수다>에서 전개되는 16편의 드라마 속에는 누구에게나 일어날법한 에피소드들로 가득 차 있다. 특히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시대적 이야기 거리가 많아서 한 여자의 인생이야기라고만 하기에는 너무 다양한 감성이 오고 간다. 따라서 각 편에 등장하는 갖가지 에피소드 중 어느 하나에 걸릴 일 없이 살아온 사람은 몇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나의 눈물이 평범하다는 것을 인정하련다.
첫 회에서 어린 시절 애순이가 바다를 보며 엄마를 부르곤 했는데, 마지막 편에서 남편을 보내고 나서도 혼자 바닷가에 서서 바다를 향해 엄마를 부른다. 그 장면에서 나도 나의 엄마를 소환했다. 팔순이 넘으셨던 나의 엄마도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너무 아프니까 자신의 엄마를 부르시더라. 그렇게 위대한 이름이 바로 엄마다. 모든 여자들의 결국엔 엄마를 부르게 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어떤가. 나도 최근 몸이 힘들 때마다 작은 목소리로 엄마를 부르곤 하는데, 날 불러 줄 딸이 없다는 사실에 인생의 짐이 가볍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허무하기도 해서 슬프다.
<폭싹 속았수다>에서 펼쳐지는 수많은 에피소드 중에서, 애순과 관식의 딸 금명이가 알바를 하다가 도둑 누명을 썼을 때 도와준 여자가 젊은 시절 여관에서 도움을 받은 장면을 회상한다거나, 엄마 역할을 했던 배우가 애순의 시집을 편집해 준 편집자로 등장할 때 묘한 감정이 들었다. 특히 “장해, 너무 장해”라고 말하는 편집자의 혼잣말에서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리고 등장인물의 재현이라는 장치를 통해 인생은 돌고 도는, 그리고 해 아래 새것이 없다는 진리를 말해주는 것 같아서다.
우리는 모두가 외딴 섬에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수시로 육지를 오가면서 살아가야 한다. 외딴 섬이라는 자신의 영역을 지키는 것만 고집하지 않고, 육지라는 이웃들과 소통하면서 사는 것이 바로 행복을 누리는 삶일 것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동안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기쁨과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고통을 맛보며 인간은 어른으로 성장해 가는가 보다. 가슴이 뭉클해지도록 장한 삶을 살아낼 수 있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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