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CHARMBooks/e<마음에서피는꽃>

e[마음에서 피는 꽃] 코스모스(Cosmos), 코스모스(Kosmos)

truehjh 2006. 9. 6. 11:24

코스모스(Cosmos), 코스모스(Kosmos)

 

살짝 살짝 바람이 스치면 길가의 코스모스가 한들한들 가벼운 춤을 추며 즐거워한다. 가녀린 줄기 끝에서 서로의 얼굴을 부비면서 미소를 짓는다. 해가 질 무렵에 높은 가을 하늘과 하얀 구름 아래서 군무하는 코스모스 꽃들의 모습은 우아하기 그지없다. 노을에 비치는 코스모스 꽃빛은 흰색, 연분홍색, 진분홍색, 담홍색, 자주색 등으로 다양해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주기도 한다. 이러한 기억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코스모스에 관한 기억이며, 우리의 기억 속에서 쉽게 사라져버릴 수 없는 잔상들이다.

 

그러나 연약한 모습으로 흔들리는 우리의 코스모스와는 뭔가 좀 색다른 느낌을 주는 코스모스도 있다. 재래종의 코스모스와는 잎의 모양이라든지, 꽃의 색깔이 아주 다른 짙은 노랑색의 꽃이 겹으로도 피어나는 노란 코스모스다. 그런 노란 코스모스에 대한 어릴 적 이야기다.

 

꽃밭의 꽃들이 어느 정도 싹이 나고 자라서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을 무렵, 아버지가 어디선가 가져오신 꽃씨를 꽃밭 앞줄에다 심으셨다. 그리고는 불란서 코스모스 씨앗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60년대 후반 즈음 그러니까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불란서 코스모스라는 말이 주는 힘은 강력했다. 나는 친구들에게 우리 집에는 불란서 코스모스가 있다는 이야기를 자랑삼아 하곤 했고 그 말을 들은 꼬마 친구들은 모두 감탄하면서 부러움의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러한 나의 자랑은 외국문화와 접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픈 나이 어린 아이의 어줍잖은 우월감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요즈음은 곳곳에서 노랑꽃을 피우고 있는 코스모스를 볼 수 있어서 그것에 대한 추억은 거기에서 끝났지만, 여린 모습으로 춤을 추는 우리의 코스모스에 대한 아련한 사랑은 더욱 커져만 간다.

 

코스모스(Cosmos bipinnatus)는 멕시코를 중심으로 열대 아메리카와 서인도 제도에 자생하는 일년초로, 생명력이 대단히 강하며 한 번 심으면 매년 자체 내의 종자로 피어나서 개화할 정도로 우리나라 기후에 잘 맞는 꽃이다. 높이 2~3미터 까지도 자라고 상부에 가지를 잘 치며 보통 가을의 꽃이라고 여기지만, 최근에 개발된 품종들은 일장(日長)에 관계없이 봄이나 여름에 피는 품종도 나오고 있어서 가을꽃의 대명사로 쓰기에는 적당하지 않아졌다.

 

지난 6월 중순 경에 동부간선을 타고 가다가 물가에 피어 있는 코스모스를 보면서 어리둥절해 했던 적이 있다. 꽃을 본 우리 동행들은 그 이유에 대해서 마구 추측을 하며 각 자의 의견을 발표했다. 아마도 씨앗에 어떤 처리를 했을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했고, 우리 모두 잘 모르기 때문에 어느 정도 그 의견에 동조를 하면서, 제철이라는 용어의 의미가 많이 상실되고 있음을 못내 아쉬워하며 그 길을 지나갔다. 코스모스의 계절이라며 가슴이 설레곤 하던 시절이 그리웠다.

 

그리스어 코스모스(kosmos)에서 유래한 cosmos는 질서와 조화의 표현으로써의 우주 또는 질서 정연한 완전한 체계를 말하며, 질서와 조화를 나타낸다. 조화를 이룬 것은 아름다운 것으로 아름답다라는 의미도 있다. 또한 장식이라든가, 관용, 명예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영어의 cosmetic이라는 단어도 코스모스에서 나온 단어로 화장품을 말한다는 것도 우리가 잘 알고 있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우주의 질서를 깨닫기 시작할 무렵에 코스모스의 여린 춤보다 더 인상 깊게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던 개념이 있었는데 cosmoschaos라는 단어였다. 나는 온 세상의 고민을 혼자 다 짊어진 것 같은 착각을 하고 그 시절을 보냈다. 천지창조 이전의 혼돈, 무질서, 혼란의 정신세계에서 완벽한 질서와 조화의 정신세계로 들어갈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우주, 질서, 조화, 관용 이라는 단어들은 나에겐 참으로 매력적인 언어였고, 지금도 정신적인 가치를 두고 있어야 하는 언어라 여기고 있다.

 

물론 이러한 나의 성향은 파격적이면서 뭔가 특이하여야 눈에 띄는 현대의 시대적 조류에 역류하는 구시대적인 성향이라고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또한 주류의 문화가 아닌 주변부의 문화를 존중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집합적인 특성보다는 개별적인 특성에 더 가치를 두며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이 시대에서 조화와 질서라는 덕목이 어떻게 가치를 발휘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개성이 뚜렷할수록 조화의 능력을 필수로 하며, 파격이 아름다울수록 질서의 가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심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