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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에서 걷기

남들은 봄꽃 구경하며 산책하러 다닌다는데, 나는 오늘도 고장 난 보조기 핑계를 대며 밖으로 나가지 않고 방안에서 걸었다. 거실 창문에서 베란다로 나가는 문까지의 직선거리는 20걸음, 왕복 40걸음이 방안에서 걷는 나의 운동코스다. 수없이 왔다갔다를 반복해도 20분 정도를 넘지 못하는 운동량이지만 걷고 나면 진땀이 난다. 이제 땀을 좀 식히고 나서, 거꾸리로 올라가 긴장된 허리 근육을 좀 펴주어야겠다.

68세... 장애라는 광야를 떠돌던 40년

68세... 장애라는 광야를 떠돌던 40년을 마무리하며... 요즘 계속 머리가 텅 빈 상태에 빠져있는 것 같아 불편했다. 그 이유를 알 수 없어서 허둥대고 있다가, 서서히 마음 저변에서 올라오는 생각 하나를 발견했다. ‘이제는 장애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때가 된 것 같다’라는 생각이다. 내가 나를 놓아주어야 하는 시기가 훨씬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무의식 속에서 장애를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에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이 정신이 번쩍 든다고나 할까. 아니 번쩍 정신이 드는 것은 아니지만 서서히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생각은 아마도 겨자씨 4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기 시작하면서부터일 것이다. 겨자씨는 40년 전에 장애를 가진 여약사 친구들이 만든 모임이다. 가난으로 인해 교육의 기회..

_예순여덟 번째 생일

2023.03.15 스위스(?)에서 보내온 프리지어 꽃향기로 생일 아침을 열었다. 부지런한 우체국 배달 기사 덕분에, 이른 아침에 만나는 선물이다. 현관 밖에 놓인 상자를 가지고 들어와 열어보니, 쌍둥이(?) 프리지어 꽃다발이 짠~~~ 오전 내내 프리지어 꽃향기에 취해 축하 메시지와 전화에 감사의 답을 하면서, 뭔가 마음이 부산한 시간을 보냈다. 꽃을 화병에 꽃고, 세탁기를 돌리고, 동생 가족과 함께 나가서 점심을 먹고, 커피와 케익을 사들고 들어와 수다의 시간을 가졌다. 나는 아직 보지 않은 드라마 '더 글로리'와 '나는 신이다'라는 프로가 주요 화제였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도토리는 자기 집에서 한 보따리 싸 들고 온 음식 재료로 요리를 한다. 토마토, 브로콜리, 양배추, 당근, 양파, 샐러리, ..

[토픽2수업] 첫 수업

이 나이의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봉사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한국어 가르치는 자원봉사, 어제 그 첫 수업을 무사히 마쳤다. 첫 수업을 준비하는 동안 가르치는 일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교회학교 여름성경학교 보조교사로 시작하여, 대학생 시절에는 과외교사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교회학교 유년주일학교와 중고등부의 교사로 지냈다. 20대 후반에 교회에서 가르치는 일을 잘하는 좋은 교사가 되고 싶어 연신원 기독교교육학과 석사과정에 입학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 후에도 교회대학부 지도교사, 청년부 지도교사의 자리에 오래동안 있었다. 중장년시절에는 장애여성학교 글쓰기교사로 봉사한 적도 있다. 약사의 직업을 가지고 있었지만 교사라는 일에 더 만족감과 보람을 느끼고 살았다. 나에게 교사라는 단어의 의미..

봄맞이하는 호야

봄맞이하는 호야 호야가 우리 집에 온 지 4년이 지났다. 그 사이에 잎이 한 장 나왔다. 그것도 작년 여름 즈음에... 그렇게 애태우며 자라지 않고 있더니, 이번 봄을 맞이하면서 작년에 나온 잎 위로 연두잎이 한 장 더 나오고 있다. 보송보송한 솜털로 뒤덮혀 자라고 있는 모습이 너무 예쁘고 귀엽다. 기쁜 마음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잘 자라기를 기대하며!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야고보서 1 : 14~15)

나는 하룻밤에 네 잠을 잡니다. 한잠 자다 깨고, 두 잠 자다 깨고, 세 잠 자다 깨고, 네 잠을 자다 깨니 아침입니다. 여러 번 잠을 잤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네 잠을 잤는데 한잠 잔 것만도 못합니다. 아마 이래서 불면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잠이 안 올 때는 티비를 보다가, 음악을 듣다가, 책을 읽다가 혹은 뭔지 모를 잡다한 것들을 생각하다가 잠이 든다고 하지요. 나는 그렇지 않습니다. 불을 다 끄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 그냥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듭니다. 잠을 자다 깨면 잠들기 전에 했던 생각들이 다시 몰려옵니다. 오래 묵은 감정은 쌓이고 쌓여 뭐가 뭔지 구별조차 할 수 없는 응어리가 되어 올라옵니다. 풀어낼 실타래는 즐비한데 실마리 하나도 찾지 못해 낑낑대곤 합니..

얼마나 외로웠을까, 임보라

차별받는 사회적 약자들 편에 서서 목회하시던 섬돌 향린교회 임보라 목사님이 지난 2월 3일 별세했다. 그가 전도사 시절에 친구 고 성정희 목사님과 함께 만난 적이 있다. 참 씩씩하고 다정하고 포근하며 심지가 굳은 여인으로 느껴졌었는데, 5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 소식을 전하면서 ‘참 외로웠겠다’라고 말한다. 그 말에 울컥 눈물이 나는 밤이다. 교회 밖에서 뿐만아니라 교회 내에서 일어나는 차별에 대한 투쟁 역시 지독하게 외로운 길이었을 것이다. 한국 교회는 생명, 사랑, 평등 사회를 위한 그의 노력을 오래 기억해야 한다.

[토픽2수업] 마지막 Voluntary-Service 기회일 수도

삶에 대한 불안이 권태로 이어지고,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라는 무능감이 온몸을 뒤덮고 있었다. 거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하나님, 제발, 이렇게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 평온함 속에서 나를 데려가 주시면 좋겠어요.’라는 기도만 되풀이하며 살았다. 정말 이 세상에서 할 일이 별로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삶의 의미를 찾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의미를 부여하려고 노력해도 이성에 의지한 노력일 뿐 감정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나는 현재의 살아있음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살아있음이었으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 울부짖었다. 이 지난한 삶에 의미와 활기를 주는 일을 찾고 싶었다. 2022년도의 기도 제목은 ‘이웃과 더불어 의미 있는 일을 만나게 해 주세요.’였고, 2023년도 기도 제목은 ‘..

설 명절 풍경

엄마의 여덟 번째 추도예배를 드린 후, 1세대 7명이 나란히 앉아서, 2세대 8명과 3세대 2명의 세배를 받고 있는 풍경이다. 코로나 3년 만에 형제들이 다 모였다. 그 사이에 가족이 커졌다. 조카 손주 2명이 태어났고, 한 달 후에는 1명이 더 태어날 예정이다. 아마도 지금까지 오빠네 집에서 모인 가족 모임 중에서 가장 많은 식구가 모인 설 명절이었을 것이다. 태어난 지 한 돌과 세 돌이 지난 조카 손주들은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다. 넘치는 에너지를 받아내기 힘들어 앙증맞은 손가락도 제대로 잡아주지 못했다. 조카들이 어릴 때는 데리고 노는 것이 너무 재밌었는데, 이제는 힘에 겨워 손주들과 놀 수가 없었다.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오랜만에 만난 젊은 조카들에게도 물어보고 싶은 말과 해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