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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린 풍경

아침에 창문을 여니 앞마당 자두나무 위에, 가로세로로 늘어진 전기줄 위에, 하얀 눈이 살포시 내려앉아 있다. 가느다란 나뭇가지와 늘어진 전기줄을 발판삼아 촘촘히 쌓여서 서로를 붙들어 지탱하고 있는 설경이 일품이다. 밤새 눈이 내려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었다. 본 모습이 어떠하든 간에 눈 덮인 모든 사물은 순결하고 아름답게 보인다.

늙어가는 길 위에서

늙어가는 길 위에서 손에 잡혔던 것들의 형체가 부스러져 내리고, 내 것이라고 했던 것들의 경계가 무너져 버리니, 세상이 무미건조하고 무채색으로 보인다. 이것이 바로 내가 늙어가는 길 위에서 보는 풍경이다. 바깥세상뿐 아니라 내 안의 세상도 마찬가지다. 책을 읽고 글을 쓴다 해도, 돌아다니면서 보고 듣지 않으니 머릿속에 차고 넘치던 생각들이 사라져간다. 두문불출로 인해 근육량도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아무리 집 안에서 운동을 한다고 해도 목표치에 이르지 못하는 양이다. 이렇게 노화를 절감한 것은 지난해가 피크였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현상도 아니고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늙어가고 있다는 증거일 뿐이다. 나의 몸과 생각만 늙어가고 있는 것은 아니..

도서 - 나답게 나이 드는 즐거움 / 류슈즈

나답게 나이 드는 즐거움 / 류슈즈 페북에 책 광고로 올라온 을 미리 보기에서 몇 페이지 읽어보았다. 대만 작가의 글인데 우리말 번역이 너무 유연해서 얼른 구입했다. 책은 설명절 연휴 전날에 도착했는데, 포장을 벗긴 후 두 시간도 안 걸려 다 읽어버렸다. 연휴 동안에 천천히 읽으려던 애초의 계획이 빗나가고 말았다. 우리말 글처럼 번역이 자연스러워서 글이 술술 읽혔다. 대부분의 글 소재가 우리 나이에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었을 게다. 212쪽으로 책값에 비해 너무 얇다는 것이 약간의 불만이지만, 글씨가 크고, 행간도 넓어 읽는 데 부담은 없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보니, 초판 발행일이 2024년 1월 31일이다. 그렇다면 책이 나온 지 8일 만에 내가 읽었다는 이야기다. 우리 출판사에서 출판한 책들..

[토픽2수업] 도파민 분비

도파민 분비 지난주 주보에 한국어교사 봉사자 모집 광고가 올라왔다. 자세히 살펴보니 내가 할 수 있는 봉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늘 오전에 전화를 했다. 어떤 사람이 필요한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등 몇 가지 궁금한 점을 물어보았다. 면대면 수업이고, 매 주일 오후에 진행되며, 장소는 교회에서 좀 멀고, 계단이 높은 2층이란다. 친절한 담당자에게서 함께 참여하자는 권유를 받았으나, 이동이 불편한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직은 없는 것 같아서, 줌수업이 필요한 상황이 되면 연락해 달라는 말을 남기고 종료했다. 지난 1년간 미얀마 학생들과 줌으로 진행한 토픽시험 준비 수업은 만족감이 아주 높다. 특히 내가 작성한 커리큘럼으로 진행하는 쓰기 수업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 도파민 분비가 왕성해..

[스크랩] 중년의 로마 황제,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

오십은 무거운 나이…로마 황제가 중년의 위기 넘어선 비결은? (daum.net) 오십은 무거운 나이…로마 황제가 중년의 위기 넘어선 비결은? 오십은 무거운 나이다. 가정을 꾸렸다면, 사춘기 언저리의 자녀와 병들고 늙어가는 부모를 챙겨야 할 터다. 직장 안에서도 직원들을 이끌며 실무 책임을 짊어져야 할 시기다. 집에서도, 일터에 v.daum.net 자기 방치는 아동학대보다 잔인하다 아우렐리우스는 이후로도 긴 세월 동안 전쟁터를 떠돌아야 했다. 그는 을 최전방 기지인 카르눈툼 등에서 썼다. 이는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니었다. 바쁜 일과 틈틈이 시간을 내어 마음을 고르기 위해 자신에게 쓰는 편지와도 같았다. 그는 자신이 불안과 슬픔에 휘둘리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자기 방치는 아동학대보다도 잔인하다.

[2023 타이완] 집으로

2023.12.18. 월 타이완의 조식 문화를 꼭 체험하고 가라는 도토리의 권유에 따라, 오늘은 일찍 준비하고 다같이 식당으로 갔다. 처음으로 가보는 풍경이지만, 이곳의 아침 식사 문화를 미리 학습했기에 자연스러웠고 어색하지 않았다. 조식을 마쳤으니 이제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숙소에 들어가서 짐을 다 싸가지고 나와 체크아웃! 택시를 타고 타오위안 공항으로... 공항에서... 짧은 기간의 타이완 생활에서 얻은 정보로 우리들을 커버하는 도토리의 세심함과 다정함과 활발함에 칭찬을 보낸다. 그녀의 장점이 부합된 사회성을 잘 발휘할 수 있는 현장에서, 미래를 꿈꾸며 살아가기를 기도하며 헤어졌다. 출국절차를 마치고 들어가다가 라운지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사실 내가 라운지를 이용한다는 것은 효율성이 아주 낮..

[2023 타이완] 주일 풍경

2023.12.17. 일 아침 식사 배달(?)주문은 베이컨첨가로 메뉴를 바꾸었다. 밖은 안개비가 온다는 소식이다. 오늘은 주일! 교회 가려고 준비하고 나왔다. 우버택시를 기다리며, 시간이 여유있길래 동네를 살펴보았다. 숙소 주변이 동문시장임을 처음 확인했다. 며칠 동안이나 같은 길을 걸어다니면서도 스쳐지나가기만 한 시장 골목길 안쪽이다. 불안한 내 걸음이 걱정되서 나는 항상 땅을 보며 걷는다.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나의 습관이지만, 그것 때문에 주변환경을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조금 일찍 예배당에 도착했다. 예배는 완전 중국어다. 영어라면 조금 알아듣겠는데, 중국어는 나에게 너무 생소한 언어다. 아무리 친해지려고 해봐도 가능성이 안보여 포기한지 오래다. 이어폰을 통해 통역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언뜻언..

[2023 타이완] 노을과 야시장

2023.12.16. 토(2)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커피숍을 찾아 가는 길에, 오래된 건물 하나를 만났다. 예전에 안과가 있던 건물인데 지금은 후식이나 선물을 팔고 있다. 들어가 보니 내부는 완전 딴 세상! 지나가는 길에 아주 유명하다는 아이스크림 가게가 나타났다. 상호는 이 아니고 이다. 아이스크림을 사기 위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어서, 그 앞을 지나가기가 어려울 정도다. 아이스크림은 포기하고 분위기 차분한 커피숍에 앉아 밖을 내다보니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 길 가운데서 먹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진풍경이다. 우리는 커피와 달콤한 쿠키로... 시간에 맞춰 약속 장소로 갔다. 다른 여행객들과 조인하여 7인승 승용차를 타고 고미습지로 노을을 보러 갔다. 멋진 풍경 속을 걸으리라고 기대했는데 ..

[2023 타이완] 타이중으로

2023.12.16. 토 타이페이에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비를 피해서 타이중으로 피난(?)을 간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아침에 사다 준 에그치즈전병과 믹스커피 반잔은 훌륭한 조식이다. 12시 기차라서 여유 있게 밍기적거리다가 기차 시간에 맞춰 행동개시! 어제는 30도 가까운 날씨였는데 오늘은 반으로 꺾일지도 모르니, 긴 팔과 잠바를 입고 나가야 한다. 숙소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기차역으로 갔다. 이번 타이완 여행에서는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한 것이 특징이다. 기차역에서 맘껏 여유를 부려 보았다. 역 안으로 들어가니 크리스마스 트리가 반겨주고... 스타벅스에서 자리를 잡고 놀다가... 점심 식사를 준비하여 타이중으로 가는 고속철을 탔다. 타이중역에 내리니 플리마켓이 열려있다. ..

[2023 타이완] 국부기념관

2023.12.15. 금(5) 타이페이 101에서 나와 택시를 타고 국부기념관으로 갔다. 국부(國父)란 신해 혁명으로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중화민국을 건국한 쑨원(孫文, 1866~1925)을 가리킨다. 쑨원의 호인 중산을 딴 중산공원에 자리 잡은 국부기념관은 안정감 있게 그 기품을 자랑하고 있다. 위엄있으면서도 소박하고 친근한 건축물 앞 광장에 마련된 설치물의 수면은 유리 같다. 그 위에 비취는 건물의 그림자들은 시시각각 변한다. 아름다운 풍경이다. 하늘과 그름과 인위적인 건물, 그 모두가 거울처럼 받아들이는 수면 위에 취한 듯이 어우러져 있다. 타이페이101 바로 앞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전체의 모습이 이곳에서는 아주 잘 보인다. 그래서 사진 스팟이라고도 한단다. 경치뿐만 아니라 공원과 호수들 때문에 산책..

도서 - 아버지의 해방일지 / 정지아

아버지의 해방일지 / 정지아 정지아 장편소설 를 읽으며 묘하게 빠져들었다. 읽는 내내 나의 아버지가 그녀의 아버지와 겹쳐져서 등장하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버지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이 나의 맘에 콕 와서 박혔다는 말이다. 는 한국전쟁 전후에 활동한 빨치산의 딸이 화자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아버지가 죽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여, 아버지의 장례를 치루는 동안 조문객을 통해 전해 듣는 아버지 생시의 이야기를 다양한 관점으로 서술하고, '그게 나의 아버지, 빨치산도 아닌, 빨갱이도 아닌, 나의 아버지.'로 마무리했다. 사투리가 맛깔나게 표현된 대화와 그 정서가 생소하면서도 정겨웠다.